벚꽃 산책

by 김대일

지난 일요일 퇴근하려는데 마누라한테서 연락이 왔다. 저녁 먹은 뒤 네 식구 다함께 달맞이언덕쪽으로 밤산책을 가자는 용건이었다. 귀가하면 곧장 헬스장으로 가 열나게 뛸 예정인 사람한테 밤산책을 가자고 하니 살짝 귀찮아졌지만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 흔쾌히 동의했다. 3월말이지 않나.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해운대달맞이언덕이 있는 기똥차게 재수 좋은 주민으로서 벚꽃 개화하는 요맘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으니까.

전날인 토요일 마누라는 지인과 진해 군항제를 다녀와 벚꽃 맛을 이미 봤다.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알바를 마치고 온 두 딸과 점방을 지키다 저녁이 다 되어 퇴근한 남편까지 쑤석여 기어이 달맞이언덕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한낮에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을 테지만 밤공기 서늘해질 무렵엔 눈에 띄게 준 행인들로 느긋하게 소요할 수 있었다.

벚꽃은 천차만별이었다. 만개한 듯싶은데 개화도 채 안 된 쪽도 있고 핀 듯 안 핀 듯 수줍은 표정을 지은 벚꽃도 있었다. 아마 내주쯤이면 모두들 활짝 피워 흰색과 연분홍색이 어우러진 '벚꽃봄색'의 자태를 유감없이 발휘할 거이다. 하지만 내리는 비에 속절없이 지고 말 벚꽃의 운명이 차라리 애처롭다.



지는 벚꽃

남은 벚꽃도

지는 벚꽃




선승 료칸의 하이쿠는 남은 벚꽃조차 머잖아 질 숙명을 타고났음을 확인시킨다. '너무 우쭐대지 마라. 너도 언젠가는 죽으니'는 벚꽃을 향한 경계만은 아닐 테다. 죽음을 항상 기억하라Memento Mori.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는 또 어떻고.



너와 나의 삶,

그 사이에

벚꽃이 있다​



벚꽃은 허무를 가장 닮았다. 인간사 무상함은 절정의 순간을 잠시 보여주고 빠르게 소멸하는 벚꽃에 다름 아니다. 야속하지만 그것이 순리라서 순응해야 한다. 그걸 깨닫는다면 현세의 욕망과 유혹이야말로 부질없는 것이다. 끝까지 부여잡을수록 자멸만 재촉할 뿐이니. 봄날의 허무, 벚꽃을 잊지 말라.

그래서일까. 활짝 핀 벚꽃을 즐기는 상춘객이기보다는 예고된 조의弔意에 숙연해지는 깎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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