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매끄럽게 자르지 못해 바리캉이 밀리는 걸 '씹힌다'고들 한다. 바리캉 날 사이에 머리카락이 끼어 뜯기는 느낌은 무척 불쾌하다. 바리캉 자체 성능 저하 혹은 노련하지 못해 일으키는 조작 미숙을 그 이유로 들지만 깎새에게 있어서는 좀 다르다. 커트하는 손놀림이 지나치게 빠른 나머지 바리캉에 머리카락이 걸리는 일이 잦다. 또는 머리카락이 굵고 억세고 무척 건조한 것도 모자라 도대체 머리 안 감은 지 며칠째인지 가늠조차 안 되게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뭉친 머리를 이발의자에 앉히면 열이면 열 바리캉은 밀린다.
씹히면 아프다. 하지만 대부분 손님은 심상찮은 제 머리카락과 씨름 중인 깎새를 안쓰러워하거나 머리 감은 지가 언제인지 본인도 기억을 못해 오히려 깎새 눈치를 살피며 참고 견디는 편이다. 허나 개중엔 벌컥 역정을 부리기도 한다. 일단 컴플레인이 들어왔으니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여야 한다. 하여 그길로 바리캉 놀리는 속도를 이전의 반으로 늦춘다.
- 자꾸 씹히잖아. 좀 천천히 깎읍시다.
엊그제 아침 머리가 하얗게 샌 단골이 카랑카랑한 쇳소리를 내며 항의를 했다. 손놀림 속도를 뚝 떨어뜨리고 손님 안색부터 살폈다. 게정이 통했다고 여겼는지 손님 표정은 득의만만했다. 그걸 못 참고 억울해하는 깎새. 곱슬기 역력한데 억세기까지 한 머리카락은 머리 감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아까웠던 모양인지 기름기로 번질거리는 게 위에서 설명한 바리캉 밀리는 조건을 십분 갖춘 형국이라서 깎새 아니라 이발의 신이 와서 깎는들 안 밀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커트 작업을 하는 내내 아무 말이 없던 깎새는 커트보를 거두면서 이대로는 화병을 얻어 제 명에 못 살 듯싶은 절박함에 기어이 말문을 열었다.
- 씹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바리캉질을 급히 서두르다 그럴 수도 있지만 손님 머리카락이 억세면 성능 좋은 바리캉이라도 감당이 안 됩니다. 억세다는 건 머리카락이 그만큼 건강하다는 방증입니다. 새긴 했지만 손님 머리카락이 건강하게 억세서 밀리는 택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십시오.
원성인 줄 알고 긴장했던 손님이 의미를 간파하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번지다 못해 너털웃음까지 터뜨렸다. 건강하다는데 안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손님 심기를 건드려 아침부터 감정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 이에 더해 알랑거리기까지 하면 어색해진 분위기를 사뭇 윤택하게 반전시킬 뿐만 아니라 관계도 전보다 단단해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깎새 요령이 제법 늘었다. 단, 머리카락이 억세다고 해서 다들 건강하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선한 거짓말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