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은 내가 알아서

by 김대일

노상공영주차장 관리인이 재빠른 위인으로 바뀌고 나자 주차요금을 깎새한테 맡기고 가는 손님이 뜸해졌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자주'라는 단어를 갖다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점방 찾은 손님이 부탁하는지라 싫다고 마다하지는 못했는데 괘씸한 건 전임 주차관리인이었던 노인이었다. 손님이야 주차 요금을 커트점에 맡기면 된다는 노인 말 믿고 깎새한테 맡긴 것뿐이지만 맡겨 놓은 돈 찾아가듯 뻔뻔한 것도 볼썽사나운데 대놓고 부려 먹는 듯한 그 행상머리가 밉살스럽기 짝이 없었단 말이다. 근데 곰곰이 따져 보니 비단 그 노인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위층 주인네, 바로 옆 점방인 국수 이모, 그 옆 타코야키 모녀까지 행여 부재 중에 택배가 닥치면 큰 고민없이 깎새한테 아쉬운 소릴 해댄다.

한번은 새벽 출근길에 돌연 문자가 왔다. 한밤중이나 신새벽에 울리는 문자는 거개가 비보라 영 안 반갑다.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궁금한 건 또 못 참아서 문자함을 열었더니 옆 국수 이모가 보낸 문자였다. 급한 일로 시골 친정을 가는 중이라면서 재료상이 가져올 간장과 단무지를 좀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일단 안도부터 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답장을 보냈더니 미안하고 고맙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이 아름다운 계절에 당신에게 기적 같은 일들만 가득하시길'이라는 문구가 하트에 새겨진 그림 이미지까지 보내왔다. 과유불급이었지만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옆의 옆 점방에 타코야키가 들어서기 전 치킨 점방이었을 때다. 택배 기사가 세제 말통을 맡아달라고 거의 울듯이 애원했다. 치킨 주인이 연락이 안 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면서. 치킨 점방은 저녁 배달 위주 영업만 해서 오후 느지막이 문을 열곤 했었다. 아무튼 두어 시간 지나고서야 치킨 사장이 겸연쩍게 들어와서는 모기좆만한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를 건성건성 뱉고는 말통을 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휑 나갔다.

깎새 점방이 임시 물품 보관소로 딱인 건 맞다. 아침 7시 개점해 저녁 6시 폐점이 일정한데다 매주 화요일 휴무라는 원칙은 손님뿐만 아니고 건물주, 세입자들까지 머리에 단단히 박혀 있는 까닭에 행여 그들이 자리를 비우는 사유가 생기더라도 화요일이 아닌 한 깎새 영업시간 안이면 택배 수취에 애로를 없는 것이다. 거의 매일 보는 사이에 척지기 십상이라 외면하기가 더 어렵다. 혹 그걸 노렸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깎새가 그들한테 부탁할 게 생기면 그게 뭘까? 깎새가 하는 일이라는 게 뭘 만들어 파는 일이 아니니 간장, 단무지, 세제 따위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럼 뭘? 전혀 안 떠오른다. 점방 문을 아예 닫을 때까지 아마 안 떠오르지 싶다. 깎새는 점방에 필요한 물품을 자택으로 보내게 해뒀다. 번거롭게 왜 그런 식이냐고 마누라가 성화지만 택배 도착지를 끝내 자택으로 고수하는 깎새.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자면 가까운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운 짓이라 차라리 내 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심산에서 비롯되었으니 따지고 보면 '더불어함께'를 자진해서 봉쇄시키는 이상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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