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머리를 끈으로 칭칭 묶고 점방을 찾는 장발 손님은 호구 잡힐 각오를 해야 한다. 묶은 끈을 풀면 장발도 그런 장발이 없어 커트하는 손품이 두세 배는 더 드는 탓에 요금은 6천 원이지만 추가요금은 부르는 게 값이니까. 언제 다듬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게 기르기만 한 머리카락은 치렁치렁 늘어진데다 속숱은 아마존 열대우림 저리 가라 할 만큼 빽빽하게 엉켜있어 사전 정지 작업만 한참이다. 걷어낼 거 다 걷어내고 칠 거 다 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커트 작업이 들어가니 보통보다 곱절 이상은 더 드는 시간과 손품은 당연히 머리끈 손님이 보상해 주는 게 상도의인 것이다. 깎새가 그래도 양심은 있어 대중없이 지르는 축이 아닌지라 기본요금에서 3천 원만 더 받는 것으로 끝내는 게 다행인 줄 알아야 한다. 그보다 더한 웃돈을 요구할지랃 횡포는 아니다.
장발 커트가 번거롭기 짝이 없지만 정신승리인 양 위안 삼을 부분도 나름 있다. 전체적으로 머리에 씌워 사람머리 모양을 낸 이른바 통가발을 가지고 주야장천 연습했던 때가 있었다. 이발학원에서 자격 실기 시험을 대비할 때였다. 사극에서 큰 칼을 차고 상투가 풀어져 헝클어진 대역죄인 형상을 한 통가발은 커트의 시작과 끝을 연마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늘어진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걷어낸 부분을 다듬어서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창출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수련하는 데는 통가발만 한 교보재가 없으니까. 실제 사람 머리를 활용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그와 유사한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통가발만 들입다 깎아대지만 문제는 비싼 구입가였다. 효과 만점이랍시고 마구 썼다간 기둥뿌리 뽑힐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아무튼 그런 통가발 같은 장발이, 통가발을 덮어 쓴 듯한 살아 있는 사람이 떠억하니 이발의자에 앉아 있다면 손 안 탄 완전 신삥 통가발을 앞에 둔 학원생 시절이 떠오르면서 두근반세근반하기 일쑤다. 잘 깎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어떻게 요리해야 잘했다는 생색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한바탕 자웅을 겨루는 야릇한 기분을 즐기면서 말이다. 바야흐로 첫 가위질에 사정없이 머리카락이 잘린 이후로 영화 가위손의 명장면을 연상하듯 신들린 바리캉질의 향연이 벌어진 뒤 드디어 모든 작업이 끝나 멀끔해진 두발을 앞거울을 통해 발견한다면 당사자인 손님보다 더 밀려드는 쾌감은 거의 오르가슴이다.
그제 낯선 청년이 모자를 덮어쓴 후드티를 입고 들어오자마자,
"요금 6천 원 맞죠?"
운부터 먼저 떼고 깎새 확답을 기다렸다. 당연하다는 눈빛 신호를 보내고서야 모자를 벗었는데, 꽁꽁 묶은 긴 꽁지머리가 튀어나오고 머리끈을 풀자 엄청난 장발이 눈앞에 펼쳐졌다. 추가요금을 받겠다는 깎새 요구를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킨 청년은 필시 협상의 기술을 아는 녀석임이 분명하다.
다른 장발보다 더 낑낑댔던 것 같다. 참머리에다 속숱은 칡덩굴마냥 머리 구석구석에 뻗어 있어 자르기부터 다듬기까지 뭐 하나 수월한 구석이 없었다. 게다가 추가요금도 못 받으니 보골이 날 만도 했다. 그런데도 성마른 깎새가 그날따라 어쩐 일인지 수굿하게 작업에만 집중하는 게 아닌가.
'이런 통머리는 처음이야. 그래, 오늘 날 잡았다. 작품 하나 뽀대나게 만들어 보자!'
이런 기분은 깎새가 아니면 정말 못 느끼는 희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