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19)

by 김대일

연애 편지

유하

공부는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쿵푸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게 아니라

이연걸이가 심신 합일의 경지에서 무공에 정진하듯,

몸과 마음을 함께 연마한다는 뜻이겠지요

공부 시간에, 그것도 국어 시간에

나는 자주 졸았습니다

이를테면, 교과서의 시가

정작 시를 멀리하게 만들던 시절이었죠

물론 졸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옆 학교 여학생이 보낸 편지를 읽던 날이었습니다

연인이란 말을 생각하면

들킨 새처럼 가슴이 떨려요…

나는 그 편지의 행간 행간에 심신의 전부를 다 던져

그녀의 떨림에 감춰진 말들을 읽어내려 애썼지요

그나마 그 짧은 글 읽기도 선생에게 들켜

조각 조각 찢기고 말았지만

그 후로도 눈으로 쫓아가는 독서는

공부 시간의 쏟아지던 졸음처럼 많았지만,

내 지금 학교로부터 멀리 떠나온 눈으로

학교 담장 안의 삶들을 아련히 바라보니

선생의 시선 밖에서, 온 몸과 마음을 다 던져

풋사랑의 편지를 읽던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유일한 쿵푸였어요


(시인처럼 나도 연애 편지 속 감춰진 말들을 읽어내기 위한 쿵푸를 도야하기 위해 국문학과를 지원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순탄하게 바라는 대학엘 들어간 걸로 내 할 일은 끝났다고 여긴 나는 4년 세월을 고스란히 탕진했다. 만약 입학이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고 더 진화된 로맨티스트가 되기 위해 매진했다면 나라고 근사한 인사가 되지 말란 법 없다. 이를테면 이 시를 지은 시인의 프로필을 닮은 시인이, 영화감독이 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하여튼 기회 닿을 때 사람은 꼭 공부를 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호모 미디어쿠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