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달리기 예선전은 총 4팀이 나와 겨뤘다. 그 중 두 팀이 결선에 나간다. 막내딸은 자기 팀의 1번 주자다. 예선 치르는 아침, 깨워야 일어나는 녀석이 원래 시간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뭔 일인가 싶었는데 시합 앞두고 너무 떨려서 잠을 못 잤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순진함이 아침을 싱그럽게 만들었다.
다니는 중학교 체육대회(11/19)가 열리는가 보더라. 여러 종목 중 이어달리기에 막내딸이 출전하고. 펜싱 연습을 꾸준히 한 덕에 살 확 빠지고 체력이 좋아졌다. 하체 단련의 일종이라며 주야장천 체육관을 뱅뱅 뛰어다녀서인지 뜀박질 하나는 확실한가 보더군. 이어달리기 시합에서 막내딸을 1번 주자로 내세운 이유로 충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연습 때마다 반 친구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인갑더라. 자기가 팀을 하드 캐리한다는 막내딸의 표정엔 자부심이 대단했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아니 봐서 모르지만 어딘지 주눅이 늘 들어있던 예전과는 영 딴판인 녀석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뿌듯하다.
소심하고 모질지 못한 건 안 닮아도 되는 아빠의 성격임에도 판박이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한번 기가 죽으면 여간해서는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까지 데칼코마니다. 아빠가 막내딸 나이였을 무렵 몰라서 못하는데도 대역죄인인 양 주눅 들어 했더랬다. 누군가 실패가 아니고 실수라고 위로해주길 바랐을 테지만 아무도 없었다. 대신에 중1 겨울방학 즈음 새벽 6시면 한 손에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곤히 자는 큰아들을 우악스럽게 깨워서 냉수 마찰을 시킨 뒤 책상머리에 앉게 했던 아빠의 아빠는 무척 위압적이었다. 그게 빌빌거리는 장남의 기를 세워주는 자기만의 교육 방법이자 교육 철학이었겠지만. 어렸음에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이도 저도 아닌지는 하는 데까지 해보면 알 수 있을 테니 닥치고 미친 듯이 해보라, 그게 공부가 됐든 뭐가 됐든. 당신 뜻이야 요즘 용어로 치면 자기주도학습이었겠지만 아침 밥 먹을 때까지, 아침 먹고 점심 먹기 전까지, 점심 먹고 저녁 먹기 전까지 꼼짝달싹 못 하고 교과서에 코 박고 있었던 게 야구방망이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아들내미 옆에서 역시나 꼼짝달싹하지 않은 독기에 질려서였지 자발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겨울방학 내내 스파르타 학원에서 용맹정진하듯 단단히 채비를 갖췄으니 이듬해 성적을 말하면 입만 아프다(당시 중학교 성적이란 게 조금만 신경쓰면 쑥쑥 올라가기 마련이니 크게 생색낼 게 못 되지만). 반에서 수위를 달리고 전교 등수까지 가파르게 올라가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더 우쭐해 하는 건 수단의 과격함은 차치하고서 누군가가 끝없이 응원을 보내줬고 그 덕에 이전에는 별로 못 느끼던 성취감에 고취된 아이가 스스로 가둔 열등감의 감옥을 깨부수는 쾌거를 거둔 점이다.
물론 아빠의 아빠가 보여줬던 과격한 교육열이 당대에서만 그 효력을 발했을 뿐 막내딸에게까지 대물려 적용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다만 아빠의 아빠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한이 있어도 꼭 전하고 싶었던 것, 이를테면 몰라서 못하는 건 죄가 아니지만 안 해서 못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모욕이다, 사람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니 자기가 무가치하다는 따위 쓰잘데기없는 생각 말고 주눅도 들지 말라는 인생의 지남철만은 막내딸한테 각인시켜 주고 싶다. 그래서 야구방망이 대신 주먹을 맞대는 인사를 하루에도 수십 번 나누면서 아빠의 마음을 전하려 한다.
저녁 먹을 때까지 예선전 결과를 말 안 하길래 살짝 긴장했다. 좀 아쉽다는 듯 한쪽 눈을 씰룩거리더니 4팀 중 2등을 해서 결선에는 진출했단다. 1번 주자 소임을 다했냐고 물었더니 '당연하지!' 목소리도 우렁차다. 결선 때는 하드 캐리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나. 해맑으면서 당당한 녀석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주먹 쥔 손을 쭉 내밀었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녀석도 쭉 뻗어 응수한다. 누군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면 그 유명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우연하게 보이는 형태적 구성 속에서 대상 자체의 본질이 섬광처럼 드러나는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에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