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으로 아사 직전이었던 19세기 초반 유럽. 남부 독일에서 흔한 음식이었던 ‘자우마겐(Saumagen)’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사례가 급증했다. 자우마겐은 ‘돼지(sau) 위(magen)’라는 뜻 그대로 돼지의 위장에 돼지고기와 감자·당근 따위를 다져 넣고 익힌 소시지인데,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하다. 자우마겐뿐만 아니라 모든 소시지가 상하면 같은 식중독을 일으킨다고 1817년 시인이자 의사였던 유스티누스 케르너(Justinus Kerner)는 지적했다.
‘소시지 중독’이라고 불린 이 식중독은 1870년대에 와서 소시지를 뜻하는 라틴어 ‘보툴루스(botulus)’를 활용해 ‘보툴리스무스(botulismus)’라는 병명이 생겨났다. 1895년에 벨기에 한 마을의 장례식장에서 34명이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다. 모두 절인 훈제 햄을 먹은 환자로 동공이 커지고, 근육 마비 현상을 보였다. 3명의 사망자가 나온 문제의 햄 분석과 부검 결과, 소금에 절인 날고기와 식중독 사망자의 조직에서 같은 세균이 발견되었다. 1898년 이 세균에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공식 이름, 곧 ‘학명’이 부여되었다.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생물 무기 개발에 동원됐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세균을 사악한 구렁텅이로 몰고 간 것이다. 보툴리눔 독소라는 맹독성 신경 독소는 신경에서 근육으로 전달되는 화학 신호를 차단해 근육을 마비시킨다. 이것에 중독되면 서서히 마비 증상을 겪다가 결국 호흡 또는 심장 정지로 생명을 잃게 된다. 대표적으로 세균전 부대로 악명 높은 일본의 731부대는 만주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보툴리눔 독소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어둠의 자식이던 보툴리눔 독소에 변신의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안과의사 앨런 스콧(Alan Scott)은 1960년대부터 사시 교정 수술 대체법으로 눈을 움직이는 ‘안구 근육’에 약물을 주입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여러 물질을 테스트해봤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하던 차에 보툴리눔 독소가 눈에 들어왔다. 스콧은 보툴리눔 독소가 일으키는 근육 마비에 착안했다. 정제한 독소를 희석하여 국소적으로 적당량을 투여하면 원하는 근육 교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확신을 얻은 스콧은 197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자원자에게 시술했다. 시험 결과 그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자 1년 뒤 FDA는 A형 독소를 인체 특정 부위에 사용하는 것을 승인했다.
1987년 캐나다인 의사 부부는 대화 도중 보툴리눔 독소의 새로운 용도를 우연히 발견했다. 눈꺼풀 떨림 환자의 미간에 보톡스를 주사했는데, 신기하게도 주름까지 없어졌다는 안과 의사인 아내의 말을 듣고 피부과 의사인 남편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바로 이 독소를 주름 개선 시술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미국 제약회사 앨러간(Allergan Inc.)은 1991년 보툴리눔 독소 A형에 관한 모든 지식재산권을 매입해 ‘보톡스(Botox®)’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했다. 2년 뒤에는 영국 제약회사가 조성을 조금 다르게 하여 ‘디스포트(DYSPORT®)’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이 브랜드의 이름은 ‘근긴장이상증(dystonia)’에서 유래했다. 현재 보툴리눔 독소 A형은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져 시판되고 있으며, 전문의 손에서 거의 기적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독도 잘 쓰면 약'이란 속담을 실현하고 개과천선의 전형을 여실히 보여준 보톡스의 유래다.(<김응빈의 미생물 '수다'-보톡스 이야기> 요약, 경향신문, 2021.10. 29.)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가 흥미롭다. 따라읽기도 어려운 라틴어 학명에 여전히 골치가 아프지만 미생물에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어원을 추적하는 재미는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필연 아닌 우연은 없다는 말은 인간뿐 아니라 세상 만물에 필요하지 않은 미생물은 하나도 없다는 주장과 등치함을 의미하고 그걸 나같은 과학 무지렁이한테 끊임없이 깨치게 하려는 노력에 열중하는 과학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솔찮다. 딱딱한 이론 나열이 아닌 인문학적 소양을 과학에 버무려 재미지고 흥미롭게 늘어놓는 타짜들의 글들로 읽는 재미는 배가한다. 박제된 실험실 속 과학을 실생활 속 언어로써 이해의 지평을 넓히려는 일단의 과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과학 과목이 싫어 평생 문돌이로만 살던 나도 보톡스의 개과천선에 토를 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소기의 성과를 이룬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