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개그

by 김대일

어떡해 오늘 나 또 지각이야/아 미치겠네 미치지 말고 솔을 쳐봐/뭔 소리야 이게 웃긴 얘기야/참 어이없게 집 갈 때 생각나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지금 너 불만 있냐 아니 물도 있어/너 어디야 지금 제주도야/내 맘을 흔든 너 재주도 좋아


Yo A.Z.E/아재의 꿈은 커다래/너의 센스 존중해 Respect/아주 어마 무시 무시 무시무시해/천방지축 어린 아이 같아 후/I think 말장난 신선한 발상/척척박사 아무도 못 말려/크게 웃어 줘요 활짝


마마무 노래 <아재개그> 가사 일부다. 노래 속엔 소개한 가사 말고도 아재개그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오 아재 소금이 죽었소 맞춰봐/소금이 죽으면 죽염이 되오 죽염/엊그제 어떤 아재한테/이 가사 쓰려고/몇 개 좀 배워왔소 Let's Go


결혼한 복숭아는 웨딩 피치/만인의 파이는 Wifi/소시는 옷 가게에서 티파니/소가 위로 올라간다 소오오름/너무해 너무해 그래 너는 무해/잘못 봤다간 멘탈 다 나갈 수 있어


부제가 '말놀이가 인간 행복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이라는 『아재개그를 권함』(뿌리와이파리)은 터키 여행 전문 가이드이자 한국말과 글을 주제로 책을 쓰는 저술가인 김철호의 아재개그를 탐구한 책이란다. 기성세대 남성들이 구사하는 재미없는 말장난이나 언어유희, 유행에 뒤처진 개그로 무시당하기 일쑤인 아재개그로 책을 낸 사람에게 아재개그의 본질을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답이 설득력이 있다. 매사 진지하거나 또는 아침형 인간이나 돈만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아재개그가 나올 여유가 없다, 경쾌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인생길을 가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아재개그를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근없낙(근거 없는 낙천주의자)에 근거한 꿋꿋함도 필요하다면서 삶의 태도를 설파한다. 아재개그는 사람이 처한 실존적 맥락에서 살짝 벗어나 삶의 여유를 갖게 하고, 세상살이에 대한 지혜도 키워준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대학 1년 선배인 강헌 대중음악평론가와 바둑을 뒀을 때 일화를 들었다. 저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장고하자 선배가 '야, 돌이 죽지 사람이 죽냐'고 했다. 그 말은 바둑에 죽자사자 몰입했던 자신을 일순간에 현실 모드로 돌려 놓은 촌철살인이었다. 말놀이는 사람이 처한 맥락에서 벗어나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바라는 아재개그의 이상은 어색하고 불편한 아재개그가 아니라 건강하고 유쾌하고 인간미 넘치는 아재개그라고 책에 썼단다. 예를 들면, 알고 지내는 시인이 저자에게 '먼저 드시고 계세요. 무거우면 잠시 내려놓으시고요'라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뭘 먹다의 '드시다'를 들다로 비틀어 말놀이를 한 건데 그걸 본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면서. (<짬-저술가 겸 여행가이드 김철호 씨>, 한겨레신문, 2021.11.05.)​

내 주변에 말재주꾼이 몇 있다. 싱거운 아재개그가 지나쳐 실소를 자아낼 뿐만 아니라 뚫린 입을 꿰매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가 가끔 이는 그들의 공통점은 크게 공들이지 않고 툭툭 내뱉는 것 같은데 그 효과가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라는 데 있다. 천재적인 임기응변과 기지로 주위에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적들을 물리치는 무기로 탈바꿈시키는 맥가이버마냥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무심하게 쓰는 말을 고도로 발달한 잔머리로 버무리고 짜깁기한 다음 극적으로 발설함으로써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분위기를 반전(좋은 쪽이든 그 반대든)시키는 능력은 탁월하다. 주변의 어떠한 강압에도 불구하고 터진 입을 절대 봉인하지 않으려는 언어의 연금술사가 낙천주의자가 아니라면 제 명에 절대 못 산다. 내가 주목하는 건 아재개그를 탐구한 책을 펴낸 필자의 말을 빌어 말하면 '근없낙(근거 없는 낙천주의자)'에 근거한 꿋꿋함'이다. 그러고 보면 아주 소싯적부터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이 낙천적이었다. 그런 삶의 태도가 그들의 말발에도 오롯이 스며들지 않았나 싶고. 성마르고 옹졸한 성질머리로 근근이 버티듯 일상을 고단하게 사는 나로서는 그들을 동경하고 닮고 싶은 욕구가 강했지만 하나같이 따라하기 힘든 캐릭터들이라 버겁다. 그럼에도 그들의 친구 리스트에 말석이라도 끼어 있는 덕에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건 내 인생의 커다란 행운 중의 하나다. 만날 적마다 들었던 주옥같은 그들의 아재개그를 그때는 왜 모아두질 않았는지 내 게으름에 통탄해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그들 입에서 터져나오는 말이면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수단을 강구해 단단히 벼른 다음에 앞으로의 만남에 임할 작정이다. 여차하면 꺼내 보는 활력소로 그만인 그들만의 어록을 만들 만반의 태세를 갖춘 다음에 말이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용, 수정동 터줏대감이 다 된 완, 딱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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