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타인에게 자기를 빌려주기도 해야 하지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자기를 줘야 한다.(몽테뉴, <수상록> 3권 10장)
- 무슨 일에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주어서는 안 되고 그냥 빌려주는 정도로 끝내야 한다.(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 타인 말고 자신에게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라.(고다르 영화 <비브르 사비> 한국어 자막)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칼럼에서 자기를 존중하려면 먼저 자기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나는 나다'에 대해 설명하면서 위의 인용문을 끌어왔다. 그러면서 최근에 끝난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제작 초기 과장된 경쟁 구도,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의 서사에서 자존감의 드라마로 변해간 까닭을 춤을 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한 댄서들을 통해 유추했다. 즉, 이기거나 졌다고 우는 게 아니라 그런 각자의 자기 존중을 이해하고 응원하기 때문에 함께 울고 있었고, 가수의 뒤에 있던 때에도, 화제의 중심에 있는 지금도, 그들은 내내 '자기에게 자기를 주는' 사람들이라는 점. 어쩌면 그게 시청자들을 열광시킨 주요인일지 모른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는 못 봤지만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7명의 팀 리더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춤을 추는 자신을 사랑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응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내 생각에 '미쳤다'라는 표현은 스스로에게 떳떳한 자기확신이 생기고서야 쓸 수 있다.
필자는 칼럼 말미에 댄스와 정치를 견주면서 자존감은커녕 자존심도 없는 자들에 대해 일갈했다. 내 생각도 똑같다. 길지만 모두 인용하겠다. 마지막 구절은 탁견이다!
- 여당의 경선에도 정치철학은 없었지만, 역사가 긴 제1야당은 한 정치 신예를 단지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대선후보로 옹립했다. 그가 최악의 독재자에 대해 '학살은 했지만 정치는 잘한' 운운한 것은 (그 캠프의 구호 중 하나인) '상식'에조차 미달하는 발언이다. 그런 후보 주변에 모인 숱한 중견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자존감이란 무엇일까. 애초 존중해야 할 '자기'라는 것이 없었는가. 아니면 그것이 '친박'이나 '반문'처럼 언제나 두 글자짜리여서 모든 게 그토록 간단한 것인가. 몽테뉴를 뒤집어 말하면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는 자기를 빌려주고 타인에게는 자기를 다 줘버리는' 일이 아닌가. 자존감에 대해서라면, 크루는 정당으로부터 배울 게 없고 정당은 크루에게 배울 능력이 없어 보인다.(<신형철의 뉘앙스>, 경향신문, 202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