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에 앞서 해야 할 것

by 김대일

워케이션(workation)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다.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곳에 머물면서 일을 병행하는 '지역 체류형' 근무제도다.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무너지고,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신문 기사는 소개한다. 강원도 평창 한 호텔에 머물며 업무를 보면서 강릉 명소 등을 유람하는 언텍트 관광을 즐기는 '강원 워케이션 시범 프로그램', 경남 통영시 두미도에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진행하는 '섬택근무' 등을 예로 들면서 워케이션은 전국에서 실험이 진행중이라고도 했다. 워케이션은 업무 효율은 물론이고 삶의 활력까지 올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다는 특징이 있다. 한 관광학 박사는 "노동의 가치가 여가의 가치를 압도하던 시대는 끝났다. 노동과 여가가 모두 중요하다는 개념을 넘어 노동과 여가, 일상과 업무가 적절하게 섞이는 워라블(Work-Life Blend)시대가 오면서 워케이션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삶의 방식이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전망이 나를 들쑤석거리게 만든다.(<지금 워케이션중입니다>, 한겨레신문, 2021.11.10.)​

노트북과 인터넷이 나한테야 해당사항이 없는 대신 가위와 바리캉을 들고 유수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그 곳 사람들 머리 깎아 돈 벌고 유람도 즐기면 더할 나위 없겠다. 서남해 섬들을 일주하는 게 버킷리스트 상단에 올라 있으니 워케이션 장소는 천상 섬이 될 게다. 공중위생관리법은 영업소 외 장소에서 이용업을 행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 법령에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꼭 지정된 영업소가 아니라 해도 이용업무가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예를 들어 질병, 고령, 장애나 그 밖의 사유로 영업소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사회봉사활동 차원에서 이용을 하는 경우 따위는 제외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뜻있는 독지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섬 저 섬을 오가며 싼 값에 머리를 깎아 주면 싫어할 주민은 없을 것이다. 요금 받는 게 거시기하면 하룻밤 묵는 숙박비나 식사비로 퉁치면 그만이고. 그렇게 나는 그 섬에서 오롯이 내 하루를 즐길 수 있을 거이다.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

허나 내가 바라는 워케이션이 희망사항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선행해야 할 게 산적하다. 무엇보다도 가족들한테 먹고 살 걱정은 안 끼쳐야 한다. 무슨 똥배짱으로 혼자 재미볼 텐가. 그러니 내 워케이션은 워케이션 한다고 해서 손가락질하는 하는 사람이 없는 그날까지 일단 유예다. 그때까지는 돈이라는 걸 벌어야 한다, 그것도 독하게. 나 이만큼 벌어뒀으니 지금부터는 노동과 여가가 적절히 섞이는 워라블을 즐기고 싶다고 당당하게 주장해도 군소리 안 나올 만치 버는 게 어느 정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벌긴 벌어야 한다. 결국 궁색하고 서글픈 현실을 직시하고 만다. 워라블이든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든 뒷배가 든든할 때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감히 넘볼 게 아니다.

오늘 알바 가는 날. 도살장 끌려가는 소 기분이 된 지 좀 됐다. 돈은 벌어야겠는데 거기서 일 하기는 싫은 복잡한 심정을 쓰자면 단편소설 한 편은 너끈하다. 어쨌든 나를 살살 달래야 할 텐데 워케이션, 워라블을 주문처럼 종알거려 보겠다. 오늘의 이 고통은 내일의 쾌락을 위한 밑거름이라 애써 자위하면서 말이다. 어째 희망 고문 냄새가 나긴 하지만.




작가의 이전글환기구 옆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