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

by 김대일

50명 정도 들어와 있는 단톡방이다. 같은 대학교 ROTC 출신 선후배가 멤버들이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친형제보다 더한 우애를 과시하려는 듯 말끝마다 행님, 동상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단일대오를 부르짖을라치면 행님, 동상 자리에 '개새끼'라는 과격한 호칭을 붙인다. 결속 다지기 용으로 쓰이는 오래되고 상투적인 암구호 격이지만 남이 들으면 오해하기 딱 십상이다. 아무튼 단톡방은 늘 시끄럽게 깨똑거린다.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 등산하는 이가 아침 풍경을 찍은 사진을 습관적으로 올리는가 하면 고등학교 교장인 어떤 이는 할로윈 축제랍시고 오징어게임 분장을 하고 찍은 기념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무료한 일상을 무료하지 않게 보내기 위해 멤버 혼자서 또는 가까운 데 사는 끼리끼리 모여 필사적으로 발버둥친다. 놀고 즐기는 모든 것을 활자화하거나 인증샷으로 찍어서 올리면 그 밑으로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여건이 불비하야 아쉬운 마음만 전한다는 둥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처럼 정력적이고 다이내믹하다는 둥 상찬하는 댓글이 무진장 달린다. 하여 그 단톡방엔 수십수백 개의 말 풍선이 상습적이어서 속절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눈팅만 할 뿐 대응을 잘 안 하는 편인 나다. 아니 요새는 수백 개에 이르는 댓글 알림 숫자가 부담스러워 슬쩍 열었다 닫아 숫자를 없애는 식으로 내용을 거의 안 본다. 오늘은 이 산, 내일은 저 산 혹은 오늘은 소주, 내일은 맥주 따위 내용만 약간 상이할 뿐 패턴은 대동소이한 그들만의 단톡방 놀이가 지겨워서겠지만 보면 볼수록 내 마음은 왜 자꾸 허기가 지는지 몰라서 그 증세가 거북해 안 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뿐인데 밍기적거리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겠다. 단톡방 멤버들은 땟거리 걱정일랑 별로 안 하는 각 분야의 중견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일상을 즐기는 것일 뿐이고 그들과는 적잖게 괴리되어 있는 내 얄궂은 형편이 스스로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맞다. 하여 이 꼴 저 꼴 안볼라치면 미련없이 단톡방을 나가면 그만이다. 근데 나가기 버튼에 손가락이 자꾸 가다가도 한참을 망설인 끝에 손을 거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만약 내년에 커트점을 차린다고 치면 부산 주변에 사는 이들은 단톡방 덕에 손님으로 쉽게 유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얄팍한 상술이 머릿속에서 열심히 주판알을 튕구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사람은 이래서 불편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맞다고 연신 가지를 치듯 주변 사람을 배제시켜 나가면 남아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고독한 현실을 직시한 까닭이 더 크다. 젊을 때는 아쉬운 줄 몰랐던 친구 혹은 지인의 존재가 나이 오십이 차고 한 살 두 살 더 먹을수록 한 사람이라도 아쉽다는,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늘 외롭다는 각성이 뼈아프기만 하다.

나를 좋아해주건 안면은 텄으되 무덤덤하게 지내건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고 망극한 나이가 됐다. 알바하고 밤 늦게 퇴근하다 한산한 공원 벤치에 주저앉아서 나도 모르게 신세 한탄을 할 때, 돌연한 감정 변화를 가족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 주변머리가 한탄스러울 그 때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하다못해 휴대폰으로 연락해 넋두리를 풀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만큼 처량하고 비참한 것도 없다. 그러니 주말마다 모여서 등산을 가든 골프를 치든 막걸리, 소주, 맥주, 양주를 동이째 섞어 마시든 그 모든 야단법석을 최신형 휴대폰 카메라 앵글로 거창하게 박은 인증샷을 주야로 올리든 나는 새치머리 염색약을 바르느라 손목이 나갈 지경이고 그 머리 감아주느라 허리가 빠지는 한이 있어도 단톡방을 절대 나가지 못한다. 설령 그렇게라도 외롭지 않으려는 게 정답이 아닐지라도.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 척(톰 행크스)은 외로움에 미치지 않으려고 배구공 윗부분을 잘라내고 나뭇가지를 꽂았으며 자신의 피로 공에 이목구비를 그려 사람 얼굴 같은 윌슨을 완성해 대화 상대로 삼았다. 극한의 외로움에서 척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 친구가 되어줬던 배구공 윌슨이 경매에서 거액에 팔렸다는 외신을 며칠 전에 접했다. 신문 칼럼은 그런 윌슨 소식에 이런 평을 달았다.

- 한낱 배구공이지만, 인간의 외로운 삶을 지탱해준 힘이자 지옥 같은 무인도를 빠져나가기 위해 함께 소통하며 고락을 나눈 친구로 빛났던 윌슨의 가치가 눈에 띈 모양이다. 장기간 코로나19 사태를 버티며 사람들은 갈수록 어렵고 외로워지고 있다. 나의 윌슨은 어디에 있을까. 힘들어도 계속 찾아봐야겠다. 그래야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다.(<여적-배구공 윌슨>, 경향신문, 2021.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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