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척추센터 정기 외래가 잡힌 날이었다. 하루 전날 나는 일정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엄마가 입원 중인 요양병원 6층 간호사실로 연락한다. 다음날 내가 1층 원무과에서 대기하면 외출 채비를 갖춘 엄마를 간호사가 모시고 내려 오고 곧장 엄마와 예약 잡힌 병원 척추센터로 가면 된다. 그게 외래가 잡힌 날 정해진 수순이었다.
요양병원 원무과에 신분을 밝혔다. 원무과 직원은 외래 외출임을 확인한 뒤 내가 도착했다는 걸 6층 간호사실에 통보했다. 늦어도 5분 안에 엄마가 탄 휠체어가 1층 원무과에 도착하던데 15분이 지나도록 내려올 기미가 안 보였다. 원무과 직원한테 재차 독촉했다. 외래 예약은 10시30분, 요양병원에서 척추센터가 있는 병원까지 차로 암만 속도를 내도 15분 이상은 걸리는 거리다. 10시15분이었으니까 제 시간 맞추기는 글렀다. 예약 시간보다 5분 늦으면 우리 차례가 다시 올 때까지 30분 밀린다는 게 그 대형병원을 자주 드나들며 배운 눈치다. 기다리는 게 다반사인 병원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허비하는 건 넌더리 난다. 갑자기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6층에 왜 안 올라오냐고. 내가 되레 물었다. 오늘 외래 잡혔는데 왜 6층에 올라가느냐고. 엄마 주변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오늘 내가 방문한 이유가 외래가 아닌 단순 면횐 줄 착각한 게 분명했다. 그럼 어제 내가 간호사실로 외래 예약 확인 차 전화한 건 뭐지. 3교대로 돌아가는 근무조 간 인수인계가 안 된 건가. 그렇다면 간호사의 직무 유기 아닌가. 그런 생각에 미치자 보골이 단단히 났고 순간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일을 이 따위로 하냐고, 5분 늦어 30분 기다리는 게 싫어서 미리미리 채비해 달라고 일렀는데 이게 뭐냐고. 얼마 뒤 한 남자 간호사가 엘리베이터에서 튀어나오듯 엄마가 탄 휠체어를 밀고 나왔다. 휠체어 손잡이를 얼른 낚아챈 뒤 주차장으로 향하려는데 간호사의 무덤덤해서 더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 외출 확인증에 서명 좀 부탁드립니다.
그 목소리를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야말로 '그 놈 목소리'다. 6층 간호사실에는 남자 간호사가 한 사람 있다. 그와 상면한 적은 한번도 없고 통화만 몇 번 했다. 통화한 뒤끝이 늘 불편하고 마뜩잖아서 그 요양병원 다른 관계자 목소리보다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는 수화기에 모르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모르니까 알아보고 답변을 주겠다고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급한 건 아니지만 환자에 관한 사항을 제때 듣지 못할 때 드는 조바심이 사람을 성마르게 만든다. 거기다 무성의가 흠씬 묻어나는 목소리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엄마가 계신 6층에 환자가 몇 명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6층을 전담하는 간호사라면 환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은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게 본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려운 걸 물어보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백신 3차 접종 신청을 하면서 1차와 2차 때 맞은 백신 종류가 뭐였고 3차는 무언지, 접종 일정은 언제쯤인지 정확하지 않다면 대략적으로라도 알려달라는 뭐 그런 거. 문의사항이 생기면 수시로 6층 간호사실에 연락했다. 그러니 그 남자 간호사한테만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3교대로 돌아가는 간호사 중에 내가 연락하는 시간대에 수화기를 든 간호사는 랜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남자 간호사를 제외한 다른 간호사들의 태도는 판이했다. 질문에 막힘없이 즉각적으로 대답하거나 정 확인이 필요하면 일단 전화를 끊은 뒤 10분 내로 연락이 온다. 하지만 모르겠으니 알아보고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하세월이거나 기다리다 지친 내가 재차 연락을 하면 마지못해 답변을 주는 남자 간호사의 목소리는 나를 참을 수 없는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옆에 있으면 아구창을 한 방 날리고 싶을 만치. 간호사도 감정노동자라고 여기는 나는 가급적 그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끼치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편이지만 그 남자 간호사의 행태는 업무 스트레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쩌면 천성적으로 불성실하고 무성의하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아침에 벌어진 사달도 내가 병원을 방문한 목적이 외래 외출이라는 전 근무자의 인수인계를 단순 면회로 착각한 남자 간호사의 부주의함에서 비롯되었다는 후문이었다.
볼일 다 보고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다시 모신 뒤 척추센터에서 들었던 긴한 주의사항을 간호사에게 전달해야 했다. 아침 근무조가 아직 근무할 시간이어서 나는 문제의 남자 간호사 대신 다른 간호사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오전에 시끄러웠던 것도 있고 해서 수간호사가 직접 맞이했다. 아침에 터진 고성이 그 남자 간호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식으로 둘러댔는데 돌아오는 수간호사 말을 듣고 순간 뜨끔했다.
- 보호자 분 마음 십분 이해합니다. 수간호사인 저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래도 참아야죠.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겠다고 본인이 말했으니까.
나 말고도 그 간호사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을지 모를 일이다. 업무 태만을 성토하는 소리가 빗발쳐 입지가 좁아진 간호사가 퇴직 의사를 밝혔을 때 병원측은 앓던 이가 빠지듯 불감청이언정 고소원했으리라. 사직은 그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으니 오전에 벌어졌던 사달이 주된 이유가 아니다. 그러니 내가 원망 들을 까닭은 없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찮다. 모르겠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는 내가 단지 몇 번 주고받은 통화에서 느낀 부정적인 인상이 불순한 에너지로 둔갑해 그로 하여금 점점 더 무성의하고 불성실하게 부추겼을지도.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남자 간호사를 마음대로 단정지어 버린 나는 다른 누군가한테는 떳떳하게 규정지어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