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월동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사회초년병 시절에 처음 가봤다. 부산 출신 한 고참이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린대서 부서 전체가 워크샵 가듯 전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 가는 기차간에서 주색잡기에 능한 서울내기 고참 두세 명이 부산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겠다며 완월동으로 앞장서라고 나를 을러댔다. 농담이겠거니 했지만 결연한 표정이 진심이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실비집이 많았다. 진한 화장을 한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자들이 가게 앞에서 호객했다. 정육점 붉은 빛을 옮겨 놓은 듯한 가게는 밤마다 요란스러웠다. 부모님은 그들을 논다니라고 불렀고 나는 노는 계집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는 숙맥이었다. 그러니 나한테 완월동은 금단의 지역이었다. 거기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를 잡아먹을 괴수가 아가리를 벌리고 서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부터 일었다. 상하 관계가 엄격했던 부서의 막내였던데다 하필이면 ROTC 선배이기도 한 상사 명령을 거절할 만큼 강단이 세지 못해서 그들을 이끌고 택시 타고 난생 처음 완월동엘 갔다. 부산 온 김에 본가 부모님 뵙는 게 자식된 도리라고 둘러댄 나는 그들을 동네 어귀에 떨구고 타고 온 택시를 다시 잡아 타고 부리나케 빠져 나왔다. 24~5년 전 일이라 기억이 온전하지 않지만, 그날 밤 두둥실 떠있던 달은 유난히도 밝았다. 결혼시즌이었으니 봄 아니면 가을이었을 그날 밤, 괴물은 없었고 대신 완월동 윈도우 안 스툴에 앉아 담배를 꼬나문 채 밤하늘을 처연하게 응시하고 있던 한 여인네만 봤을 뿐이다. 나는 그녀가 어릴 적 정육점 불빛을 옮겨 온 실비집의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자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 '부산 완월동 폐쇄 및 공익개발 추진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라고 명명한 시민단체가 부산의 대표적 집창촌인 완월동의 완전한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었다. 그들은 관할인 부산 서구청 앞에서 완월동 폐쇄와 성매매 여성 지원을 외면한 지자체를 규탄하면서 "성 착취 집결지 바로 옆에 어린이집, 5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는 것을 지자체가 묵인하는 현 상황을 부산 시민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연합뉴스, <집창촌 옆에 유치원…부산 시민단체 “지자체 직무유기 말라”, 2020.11.17.) 그 기사를 접하고서 한참 의아해했다. 집창촌이 완월동에 터를 잡아도 먼저 잡았을 텐데 그걸 뻔히 알면서 성 매매지 5분 거리에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지은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지.
- 이호철 장편소설 『소시민』은 1951년 피난지 부산 완월동 제면소를 배경으로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의 부침이 서술되고 있다. 한때 좌익운동에 참여했으나 목을 매고 자살하는 강 영감, 과거 남로당에 가입했으나 지금은 제면소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정 씨, 난리 통에 미군 상대 댄서로 전락한 천안 색시, 원조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파는 제면소의 주인과 주인마누라, 그리고 북에서 월남해 현재 제면소에 머무르는 이 소설의 서술자 ‘나’ 등 피난지에서 부침을 거듭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고 있다. 제면소의 주인 내외와 여기를 출입하는 피난민들을 통칭해 소시민으로 호명하는 이 소설은 고향상실과 분단의 형성, 가족제도의 파괴, 인간들의 불신과 극도의 이기주의 등 한국전쟁을 계기로 분출된 우리 사회의 혼란을 주요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소시민小市民』 참조)
- 1900년대 관외에 있던 유곽遊廓이 일본 거류지 내에 편입되면서 유곽의 분리와 풍기문란을 막기 위해 아미산 아래 녹정綠町이라 불리는 지역을 조성해 유곽을 이전해 집단화시켰다. 1916년 한반도 전역에서 공창제가 시작되자 영업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947년 미군정에 의해 공창제가 폐지되었음에도 1948년 녹정이란 이름 대신 완월동玩月洞으로 불리면서 대표적인 사창가로 존속한다.
- 완월玩月은 달을 즐겨 구경한다는 뜻으로 음력 8월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추석날 저녁에 달을 완상하며 소원을 비는 달맞이 풍속이 있는데 이 풍속에서 유래되었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운치 있는 뜻은 오간 데 없고 근대 부산에서 완월은 그릇된 성 문화가 벌어지는 성 착취의 대명사로 낙인찍혀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배척당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같은 단어인데도 뉘앙스는 딴판이다. 내용과 소설에 담긴 의미가 뭐든 상관없다. 완월동이란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고故 이호철의 소설은 가치가 높다. 우리 다음 세대만이라도 집창촌이 아닌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정체성의 기원을 탐색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심진경 문학평론가)로 기억되길 바랄 따름이다.
한창훈 「판녀」를 읽다가 문득 완월동이 생각나서 예전에 끄적거렸던 메모를 옮겼다. 단편소설 「판녀」도 창녀 이야기다. 몸 파는 여자라서 이름이 '판녀'인가. 소설 속 판녀 역시 정육점 불빛을 옮겨온 실비집 젊지도 늙지도 않은 여자와 닮았다. 아니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