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 사는 손윗동서 아들내미가 수능 치고 부산 소재 대학교 체육학과 두 군데에 지원해 실기시험을 치려고 사흘 가량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갔다. 두 군데 중에서 떠나는 날 아침에 실기시험을 치른 대학교엘 가장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그 이유가 그 학교 체육학과는 교직 이수가 가능해서다. 체육 교사가 되고 싶은 게다.
처갓집 8녀1남 남매들이 낳은 자식새끼들만 도합 열일곱 명, 우리 딸 둘을 빼도 열다섯이나 되는 조카들 이름을 다 외우기도 벅찬데도 내가 유독 그 녀석을 예뻐라 하는 데는 십 년은 족히 거슬러 올라간 어느 날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까닭이다. 그러니까 녀석이 초등학교 이삼 학년쯤 됐을 때다. 여름휴가를 처갓집에서 보내던 우리 가족은 음성 처형네, 다른 식구 몇몇과 함께 음성 근처에 있다는 자연 실외 수영장으로 당일치기 피서를 가기로 했다. 동서가 가게 일로 빠지는 바람에 음성 처형과 세 남매가 우리 가족과 함께 내가 모는 차로 가게 되었다. 어른 셋에 덩치가 암만 작은 아이들이라도 다섯 명이나 탄 차는 복작복작했다. 여덟 명 탑승객 중에 남자는 운전대를 잡은 나와 볼살이 토실토실한 그 녀석 단 둘이었다. 근처라고는 해도 통행하는 차량 드문 시골길을 한 시간 넘게 운전해 가야 하는 무료함을 없애 보려고 나 말고 차 안의 유일한 사내한테 농치듯 말을 건넸다.
- 너 좋아하는 가수 있니?
- 리쌍 노래가 착 감기데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똘망똘망하게 대답했다. 맹랑했다.
- 착 감기는 게 뭔데?
- 뭐랄까, 노래가 꼭 내 얘기 같아서요.
- 네가 어떻는데?
- 말하면 이모부가 이해하겠어요? 아무튼 리쌍 노래는 감동이에요.
<Ballerino>,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눈물>, <내가 웃는 게 아니야> …. 리쌍의 어떤 노래를 두고 하는 말인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초등학교 이삼 학년짜리가 내놓는 감상평 치곤 심상치 않아 신선했다.
- 네 또래 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은 어때? 아이돌이라든가 말이야.
-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가사나 떠들고 춤만 추다 마는 가수는 내 취향이 아니에요. 구려요.
대답 뒤로 선호하는 가수 몇몇을 더 호명하는데 하나같이 그 녀석의 막내삼촌뻘이나 좋아할 만한 가수들, 제 또래 앞에서 꺼냈다간 가차없이 왕따 당하기 십상인 중견 가수 이름을 줄줄 읊어댈 때는 남 같지 않은 동질감 같은 걸 느끼고야 말았다. 국민학교 시절 기껏해야 사 학년밖에 안됐으면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를 위시한 팝송이나 흘러간 영화음악 OST 따위 주로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에 푹 빠져 주야장천 듣거나 이문세, 이수만, 이택림처럼 개그맨 끼가 흘러넘치는 가수들이 등장해 디제이인 이종환과 어른이면 다 알아들어도 머리통이 덜 자란 아이로서는 영문도 잘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라디오에서 그들끼리 노닥거리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아서 낄낄대곤 하던 딴엔 조숙했던 내가 녀석과 겹친 연유여서다. 당시 나 역시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3대 책받침 여신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친구들의 행태가 유치해 보였으니까. 부산 서면 바닥의 코팅 가게를 샅샅이 뒤져 구해온 책받침의 인물은 3대 여신의 고모뻘은 됨 직한,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영화의 한 장면인 듯한 오드리 헵번의 포즈 사진이었으니까.
음악 취향이 겉늙어서 혹시 되바라진 녀석이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단지 어린애 입을 빌렸다 뿐인 말투로 절제미가 엿보이면서도 매우 곡진하게 제 부모를 깍듯하게 섬기고 제 누나와 동생을 아끼는 말을 자분자분 늘어놓는 게 여간 기특하고 대견한 게 아니었다. 애교는 없어도 산처럼 묵직하고 듬직한 게 아들 키우는 재미라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음성 동서한테 부러움과 시기심을 느낀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여름 길목 장모 생신이나 늦가을 김장철이면 으레 처갓집엘 들렀지만 이후로 녀석을 쉬 만나지는 못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진 녀석이 외갓집에 얼굴만 슬쩍 비추다 가는 부산 이모부와 재회하기란 아무리 생극과 음성이 지척간이라도 일정을 애써 맞추지 않으면 참 어려웠다. 그저 제 엄마인 처형을 통해 근황을 접할 밖에. 음성 읍에서 선수급 실력을 자랑하는 정구 마니아이면서 체육기구 판매상인 제 아비의 영향(때문인지 자식에 대해 기대치가 높은 아비의 강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으로 테니스, 육상, 배구 따위 스포츠에 열을 올리는 중이라는 둥 그 때문인지 곰돌이 푸를 연상시키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던 도톰해서 귀엽던 녀석의 볼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몸매가 홀쭉해졌는데 키만 멀대 같이 커버렸다는 말에 당장이라도 처갓집 대문을 박차고 나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한편으로 이런저런 불운이 겹쳐 운영자금이 달려 빚을 지게 된 아비를 염려해 인근 인삼밭으로 아비와 함께 일당벌이 일꾼을 자청했었다는 말을 듣고는 사람 하나는 내가 제대로 봤다며 뿌듯해했다. 그러고도 세월이 제법 흘러 녀석이 이제 대학생이 된다! 체육학과 실기 시험을 보러 부산에 온다는 소식이 뜻밖이면서도 한시라도 빨리 녀석을 보고 싶었던 건 격조했기에 더 궁금해진 녀석의 면면을 내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리라.
부산을 떠나던 날, 아침 9시에 실기 시험이 잡혔다는 대학교까지 동행해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고 시험 끝나길 기다렸다가 픽업해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 줬다. 시험 도중 두어 번 실수를 해서 실망스럽다고 했다. 다른 어디보다 오늘 시험 본 대학교엘 꼭 입학하고 싶었는데 실수가 너무 뼈아프다고도 했다. 실기시험은 수험생의 능력을 검증하는 차원이긴 해도 시험에 임하는 수험생의 자세도 체크를 아마 할 거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착한(?) 너는 거기서 후한 점수를 받아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았을 테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전혀 근거가 없는 말로 위로를 해댔다. 그런데도 녀석은 예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그럴 지도 모르죠?' 하며 맞장구를 친다. 고마웠다.
다음 주에 청주 소재 대학교에서 실기 시험이 또 예정돼 있어서 음성 집 대신에 다른 체육학과 지망생들과 합숙을 하는 체육학원이 있는 청주행 고속버스 표를 끊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햄버거 체인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출발 전까지 잠깐 얘기를 나눴다. 리쌍을 좋아한다고 이모부에게 말했던 걸 똑똑히 기억해냈다. 괴팍한 성격의 아비가 무섭기도 하지만 몸속에 종양(악성은 아니지만)을 발견한 뒤로 전전긍긍하는 아비가 왠지 측은하다고도 했다. 체육학과에 지원하는 바람에 제 밑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솔찬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어미한테 너무 미안해 시험이 끝나는 대로 돈 될 만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받은 만큼 되돌려 줄 거라고도 했다. 만약 부산과 청주 두 곳에서 동시에 합격(녀석은 부산 소재 두 곳, 청주 소재 한 곳의 대학교에 지원했다)한다면 꼭 부산으로 내려오고 싶다고 힘주어 소망도 밝혔다.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재차 당부하고 버스에 올라타는 걸 보고서야 발길을 돌렸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보내고 나서 괜히 먹먹했다. 합격해서 꼭 부산 와라. 오면 이모부랑 자주 보자. 가끔 술도 한 잔씩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얘기 실컷 나누자꾸나. 이모부는 널 볼 때면 기분이 참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