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전환을 맞았을 지도 모르는 떠버리

by 김대일


- 이모, 싸롸있네!


영업정지 두 달 만에 가게 문을 연 꼬치구이 가게 여자 주인장을 본 CY가 건넨 인사말이었다. 녀석 특유의 붙임성과 말재간은 난생처음 만난 사람이라 해도 너나들이에 구애가 없다. 하물며 내 단골집 매상을 올려 주겠다고 서너 번 들락거렸던 가게라면 주인과는 이미 문경지우를 부르짖을 만큼 막역한 사이가 되었음은 두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여주인 입장에서 두 달 만에 가게를 열 수 있었던 건 녀석 덕이 컸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고 고발을 당한 건 충분히 주위를 기울이지 못한 주인장 불찰이지만 마수걸이 손님을 돌려보낼 배짱이 도저히 없었던 그녀로서는 그들이 미성년자인지 눈 크게 뜨고 꼼꼼하게 뜯어볼 재간이나 있었으랴. 가뜩이나 장사 준비로 분주한 초저녁에 민증부터 까보라는 말이 쉽게 나오겠냐고. 행정 당국에서 내리는 벌칙을 고스란히 다 받았다간 알량한 가게마저 접을 판이어서 살 방도를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법학 전공을 살려 행정구제 절차를 조언해 주는 CY가 무척이나 고마웠을 게다. 비록 정상 참작이 받아들여지질 않아 영업정지 2개월을 꽉 채우고 말았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매상이 없어 궁해진 건 쓰리지만 장사란 걸 하면서 사람 인심을 다 받아봤다며 애써 위로했다는 후문이다.

CY의 인상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쟁투한다. 무례하고 제멋대로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가 무지 거슬리고 배려심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다는 측과 소탈하고 격의가 없으며 꼼수라고는 없는 직설적으로 뱉어내는 언사가 허심탄회하다는 측. 일 년 반가량 지근거리에서 그를 살펴볼 기회가 몇 해 전에 있었다. 방계 회사 말단 과장으로 근무하던 나는 노(老) 회장이 벌여 놓은 관계회사 전체를 관장하는 모기업 관리 차장이던 그의 업무 처리 방식을 보면서 그의 언행이 유별나다고 소문이 난 까닭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된다.

회사 내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그것도 불시에, 그것도 자기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소동(이하 고상하게 현안이라고 부르겠다)임에도 관련 당사자보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기민함(길목마다 프락치를 심어둔 게 분명하다. 하여튼 녀석은 정보전의 귀재다), 난제에 부딪혀 경직돼 버린 조직을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이완시키는 노련함, 군더더기 요설일랑 다 집어치우고 실체를 가장 단순하고 적나라하게 적시한 뒤 조직원이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용이한 것부터 난이도를 높여 차례로 대응책을 강구하면서 이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함으로써 지시를 받는 사람들 귀에 쏙쏙 들어박혀 이해도를 극대화시키는 화법, 하여 온전히 제 통제권 안에 현안을 가둬 두고 단도리하는 능력은 가히 쾌도난마적 통쾌함이었다. 마름이라는 치욕적인 쑥덕거림을 들으면서까지 이십 년 가까이 괴팍한 부옹(富翁)의 수족 노릇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그 치열한 생존 방식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허나 회사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모든 것까지 만기친람하려 드는 데는 파놉티콘에 갇힌 수인마냥 시도 때도 없이 내가 감시당하는 착각이 들어 섬뜩하기도 했다. 하여간에 CY의 털털함은 그가 몸담은 조직을 통해 키워진 그만의 생존 방식이라고 나는 어림잡는다. 그러니 그가 속한 조직의 생리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그의 이물없으나 자칫 고약해 보이는 파격에 뜨악할 수밖에 없고 간혹 무뢰한이라 비난하지 말란 법 없다.

2016년 2월, 그가 살던 아파트에 화재가 났다. 화마의 아가리가 삽시간에 주변을 집어삼키자 CY는 15층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채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우리나라에 단 2대만 있다는 굴절 고가 사다리차가 다행히 근처 해운대소방서에 있어서 구조가 신속하게 이뤄졌기 망정이지 '생사의 기로'가 뭔지 뼈저리게 느꼈을 게다. 병원에 입원해 화상 치료를 받으면서 CY는 회심했다고 한다. 화재 덕분에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 불이 나고 얼마 안 있다가 화재 원인 조사가 덜 끝나 잿더미가 그대로인 집을 찾았지. 마누라 몰래 장판 아래 깔아둔 비상금은 다 타 버렸고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장롱 위에 숨겨둔 비아그라 오십 알도 담아둔 파우치와 함께 연기로 사라졌지. 그것들처럼 내 인생도 제대로 누려 보지도 못하고 연소되는 건 아닌가 싶다. 뭣 때문에 여태껏 아옹다옹했을까?


그가 다른 회사로 영전한 게 자기다운 인생을 찾아가려는 심산에서 비롯됐는지는 그에게 안 들어봐서 잘 모르겠다. 올해 초 인도네시아 공장 총괄 책임자로 떠난 뒤 미구에 닥친 역병 탓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완전무결한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요원하겠다. 그럼에도 이 아수라판에 그를 소환한 까닭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었어도 남은 전혀 생각해내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과거사를 마음만 먹으면 어제 일처럼 툭 끄집어내는 비범한 기억력과 기억 속의 삽화를 그만의 유머 코드로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가는 구성력이 필요해서다. 더 솔직해지자면, 글을 써야겠는데 소재는 고갈됐고 글감의 화수분이라고 할 떠버리 CY가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럴 것 같아서 몇 달 전에 이메일로라도 떠벌리게 하려고 녀석을 쑤석거렸지만 그가 그럴 여유를 부릴 계제가 아닌 줄 알았기에 더 재촉은 못했다.

내가 지금 구상하는 글은 신승훈 2집 수록곡인 <보이지 않는 사랑>에 얽힌 슬픈데 엉뚱한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자면 이 실화에 주변인으로 등장했고 그 전말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CY의 생생한 증언을 청취하는 게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나오기 위한 선결과제이다. 밑천이 달리는 나로서는 암만 잘 포장한들 착 감길 리 없으니까. 추석 연휴가 시작될 즈음 CY는 장인 상을 당했다. 급거 일시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문상 갔을 때는 아직 부산에 도착하지 않아 만나지 못했으니 아쉽다. 아서라, 아무리 백년손님이라고 해도 상사를 당해 황망한 중에 엉뚱하게 옛날 에피소드나 지껄이는 녀석이나 또 그걸 들으면서 킬킬거리는 꼬락서니나 다 꼴사납다. 기회를 봐서 이메일로 CY한테 다시 애원해 보고 정 안 되면 트릿한 내 기억의 파편이나마 모아 모아서 아교풀로 억지로 붙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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