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얼룩다람쥐라는 녀석은 슈퍼 냉각 기술을 가지고 있다. 동토의 땅에서 겨울잠 들면 이듬해 봄까지 8개월 동안 피가 언 듯 안 언 듯한 무척 차가운 상태로 버틴다고 한다. 포유동물임에도 37도인 원래 체온을 무려 영하 3도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심장은 1분에 한 번만 뛰고 뇌는 세포와 세포 사이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이상한 '대기'상태로 전환한다. 시체나 다름없이 자다가 봄을 맞아 깨어났을 때 녀석의 뇌세포들은 어떤 후유증도 없이 다시 연결된다. 겨울잠 자기 전으로 멀쩡하게 돌아간다는 의미다. 녀석은 냉동인간을 연상시키는데 아닌 게 아니라 생물학자를 필두로 과학자 일단이 단서를 찾으려고 잘 자고 있는 다람쥐 피를 뽑네 유전자 검사를 벌이네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현재 과학기술의 한계만 확인했을 뿐이었단다. 북극얼룩다람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 유전자 500개가 활동을 바꾸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인간에게 적용시키려니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라나. 냉동인간, 아직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기술이다.
만화영화에도 등장하는 귀여운 녀석에 호기심이 일어 뭐 다른 거 없나 하고 인터넷을 더 뒤지는데 '북극 다람쥐는 매년 사춘기를 반복합니다'란 제목의 글이 구미를 당겼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영하 3도까지 체온을 내려 겨울잠을 자려고 하니 수컷은 테스토스테론 생산을 중단하고 동면을 시작하는 가을마다 고환을 수축시켜야 한다. 여기까지는 대사활동을 최대한 낮춘 상태로 겨울잠에 드는 여느 동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북극얼룩다람쥐 수컷은 암컷과는 달리 견과류, 씨앗, 딸기, 버섯 등 간식을 녀석이 자는 굴에 함께 저장해 뒀다가 겨울잠에서 깨기 한달 전쯤인 3월에 일어나 몇 주 동안 그걸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해 테스토스테론을 급증시킨다. 테스토스테론이 뭐냐면 남성호르몬의 일종이다. 테스토스테론이 높을수록 성욕이 높아진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기본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높아서 남성이 성욕을 더 느낀다고 한다. 북극얼룩다람쥐 수컷은 몸을 미리 만들어 뒀다가 겨울잠에서 완전히 깨면 암컷에게 구애한다. 작년처럼. 북극얼룩다람쥐의 뇌세포가 어떤 후유증도 없이 연결된다고 아까 얘기했는데 이렇게 빛을 발한다. <사랑의 블랙홀>이란 영화는 타임루프에 빠진 주인공 이야기이다. 매년 사춘기를 반복하는 북극얼룩다람쥐도 영화 주인공처럼 타임루프에 빠진 게 맞다. 사랑의 타임루프 말이다. 그런 녀석이 부럽다. 옆에서 자고 있는 마누라 얼굴(각방 쓴 지 오래라 이 표현은 진부하면서 틀렸지만 아무튼)을 보는 아침마다 춘정에 몸달아 하던 연애시절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냉동인간이 별로 부럽지 않을 텐데 말이다. 북극얼룩다람쥐만도 못한 뇌세포를 탓해야 하나.
수컷은 평균 6년을 사는 데 반해 암컷은 11 년 동안 산단다. 암컷 사랑의 타임루프가 더 길고 확장적이다. 그것도 어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