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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일요일(23)

by 김대일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남편이 쓴 아내 시는 어떨까?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따위 신파조 말고 생생함 그 자체인 시. 찾아봐야겠다. 다음 주는 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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