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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과 비혼

by 김대일

접두사 ‘미(未)-’가 ‘아직 되지 않은’, ‘비(非)-’는 ‘아님’이란 뜻을 품고 있다. 마땅한 짝을 못 찾아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결혼하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과 대응하려고 기왕에 회자되는 ‘미혼’에 새말인 ‘비혼’이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정규직이 아니라는 ‘비정규직’에 대응해 정규직을 꿈꾸는 고용 현실을 대변하는 ‘미정규직’이란 말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국어국문학과 교수 견해는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언어 세계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아니다와 정규직이 되고 싶다의 동음이의어로 작동하고 있는 바라 굳이 '비혼'이란 새말을 만든 건 ‘미-’와 ‘비-’를 구분해야 하는 언어적 필요 때문이라기보다 '미혼'과 '기혼'으로 나누는 틀을 깨기 위함이라는 견해 또한 마땅하다.

‘남녀가 부부 관계를 맺음’의 뜻인 ‘결혼’에는 ‘이룬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결혼’의 뜻이 이러니 ‘미성년, 미완성, 미해결’이 자연스럽듯 ‘미혼’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그렇다면 ‘비혼’을 만든 의도를 제대로 살리려면 접두사 ‘비-’와 ‘미-’의 차이에 주목할 게 아니라 어근 ‘(결)혼’을 벗어나는 말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말 톺아보기-비혼>, 한국일보, 2017.4.21.)​

결국 ‘이룬다’는 뜻의 상대어 혹은 대체어로 '결혼'의 대응어를 찾아야 한다는 건데, 그게 뭘까? 혼자서도 굳세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독신주의', 'Self-Marriage' 란 단어와 비슷도 할 것 같은데. 낱말 하나에도 심오한 사회철학이 깃들어 있으니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참 어지간하다.

오랜만에 P와 통화했다. 교사인 녀석은 역시 교사인 배우자와 이혼소송 중이다. 정신 사나워 한동안 두문불출하다가 좀 살아났는지 연락을 먼저 해왔다. P를 통해 복지공무원으로 전향한 K의 최근 근황도 들었다. 서너 달 전에 K와 만나 한 잔 빨긴 했는데 그때는 미처 눈치를 못 챘다 밤이면 밤마다 바늘로 허벅지 찌른다는 걸. 의례적이긴 하나 묻긴 했다. 더 늙기 전에 짝을 찾아 봄이 어떻겠냐고. 이 나이에 누가 쳐다나 보겠냐면서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나한테 분명히 말했다. 그래서 나는 K가 '비혼'인 줄 알았다. 하지만 P 생각은 달랐다. 외롭다고 하소연하더란다. 너른 방구석(혼자 사는 주제에 33평으로 이사 간 K다. 돈 벌어 좋은 데로 이사가는 건 좋은데 혼자 살기엔 너무 황량하다)에 찬바람 쌩쌩 불면 밤이 야속하다나 뭐라나. 몇 달 사이에 생각이 바뀐 건 아닌 성싶다. K의 본심은 '미혼'이었던 것이다. 나한테 불었던 건 접대성 멘트였을 뿐이고. 그렇다면 나도 태세를 전환해야지. 사지 육신 멀쩡한 사내 총각귀신은 면하게 해줘야 친구된 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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