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과 파는 헝가리 할머니

by 김대일

차병직의 『상식의 힘』이라는 책을 보면 어떤 한국인이 헝가리에 갔다가 거기서 사회주의적 분배 방식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과 장수 할머니가 사과를 팔고 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과를 사 가는데 그 할머니가 하나는 좋은 것, 하나는 나쁜 것 이런 식으로 섞어서 팔아요. 한국 사람이 할머니에게 “돈을 더 줄 테니 좋은 것만 달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너한테는 안 팔아” 했답니다.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까요? 어리석어서? 왜 한국 사람은 모두 다 좋은 것만을 원할까요? 다 나름의 입장이 있죠. 할머니 얘기는, 먼저 온 사람이 좋은 것 다 가져가면 뒤에 온 사람은 뭘 가지고 가느냐는 거고, 한국 사람은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났으니까 좋은 걸 가져갈 자격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죠. 그러니까 한국인은 잠을 편안하게 못 잡니다. 먼저 일어나서 좋은 사과를 차지해야 하니까 피곤하게 삽니다. 평생 죽어라 일만 하면서 사는 거예요. 늦게 오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죠. 정의로운 사회가 맞나요? (전호근, 『한국철학사』에서)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한 칼럼에서 자신이 잘 아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한창 긍정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고 전했다. 18~24살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회주의’ 지지율은 50~55% 정도로 ‘자본주의’ 지지를 앞지르고 있고, 이미 사회민주주의 사회가 존재하는 노르웨이에서는 급진 좌파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그가 몸 담고 있는 오슬로대학교만 해도 전체의 3분의 1이나 되는 학생들이 급진 사회주의 정당인 적색당이나 사회주의좌파당을 지지한다.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는 최근 대형 부동산회사의 보유주택 20만여채를 몰수해 공유화하는 방안을 놓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과반이 이에 찬성했다. ‘몰수’와 ‘공유화’는 다시 인기 있는 표어가 되어가는 추세다. 권위주의 정권인 러시아에서도 지금 독재의 대항마로 다시 부상하고 있는 세력은 바로 최근 총선에서 의석을 크게 늘린 연방공산당이다.

어느 사회를 둘러보아도 팬데믹과 경제, 환경 위기 속에서 좌파가 득세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국과 일본만은 예외라고 말했다. 그가 분석한 한국의 우경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후 위기와 같은 지구적 재앙의 심각성을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 애써 외면하고, 부동산 문제 심화나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보수적 여론 주도세력이 '진보 정권'이나 '귀족 노조' 탓으로 돌리는 프레이밍을 짜 거기에 모두들 익숙해져 버렸다는 점,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진보' 정치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고 강경 보수 대 사회적 자유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진자처럼 왔다 갔다 했을 뿐이라고. 박노자 교수는 칼럼 말미를 이렇게 맺었다.

강경 보수의 적폐에 대한 분노가 쌓이면 자유주의 세력들을 택하고,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해 부동산과 불안 노동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다시 강경 보수의 인기가 오른다. 이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국, 왜 우경화하나?>, 한겨레신문, 2021.12.01.)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먼저 많이 잡아 먹는 시대는 역행적이고 착오적이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그나마 누리는 번영을 좀 더 연장시킬 수 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시답잖은 사실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

작가의 이전글미혼과 비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