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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단상

by 김대일

채식주의자를 검색하면 일곱 식자食者가 뜬다. 흔히 회자되는 비건(vegan)은 유제품과 동물의 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은 절대 입에 안 대는 가장 래디컬한 채식주의자이다. 그 외 베지테리언 유형은 다음과 같다.

-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 : 유제품은 먹는 경우

- 오보 베지테리언(Ovo vegetarian) : 동물의 알은 먹는 경우

-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 : 유제품과 동물의 알은 먹는 경우

채식주의자이긴 한데 다소 유연한 유사 채식주의자(세미 베지테리언)라면서 다음처럼 또 나눈다.

-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 유제품, 동물의 알, 동물성 해산물까지는 먹는 경우

-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 : 유제품, 동물의 알, 동물성 해산물, 조류의 고기까지는 먹는 경우

-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 평소에는 비건(vegan), 상황에 따라 육식도 하는 경우

풀떼기로만 밥상을 차린들 변변한 밥투정은커녕 일단 고분고분 먹고 보는 위인이 소증은 또 못 참아서 기왕에 7가지 유형 중에 하나를 굳이 꼽자면 플렉시테리언 언저리쯤 될라나. 그런 내가 유독 소고기 앞에서는 걸신들린 식탐에 부쩌지를 못하는 꼬락서니는 내가 봐도 참 희한하다. 돼지, 닭, 오리, 칭타오에 양꼬치가 제 아무리 별미를 뽐낸들 소고기만큼 내 구미를 당긴 적 없다. 한국인 입맛에 한우가 딱이긴 한데 헐빈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언감생심이라 한우 절반값이라는 수입 소고기나마 간만에 몸 보신하라고 내놓으면 마누라밖에 없다고 굴신하며 냉큼 잘도 받아 처먹는다.

식도락가 발톱의 때만도 못한 저렴한 입맛이 소고기 고유의 풍미를 알 리 없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큼 소고기에 집착하는 까닭을 유난스런 체질 외에 달리 둘러댈 거릴 또 못 찾겠다. 소고기 아니면 암만 잘 굽고 지지고 볶든 먹고 얼마 안 있으면 어김없이 위장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지기 일쑤라 그 버거운 생리 작용부터 먼저 떠올라 당최 입맛이 가질 않는다. 육징에 큰맘 먹고 목구멍 넘긴 보람도 없이 설사로 화해 무심하게 밖으로 다 쏟아져 나오니 먹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릇째 밀어버리는 심정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하여 모처럼 가족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메뉴 선정에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원인 제공자로서 죄인 기분이 들긴 하나 나도 먹긴 먹어야 하니 해산물 아니면 소고기 곁들인 모듬구이로 낙착을 보는 게 흔한 외식 장면이다.

그러니 소고기를 탐닉하는 내가 소고기 맛에 꼭 미쳤다기보다는 고기를 먹긴 먹어야겠는 생리적 욕구와 참을 수 없는 배설 압력의 어느 중간쯤에서 이뤄진 타협물이라는 변명이 한결 타당하겠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소고기는 가장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했고 허균은 아예 '푸줏간 문을 향해 입맛을 다신다'는 뜻의 글(도문대작)까지 썼으니 선현의 말씀에 일절 거역함이 없이 더욱 맹렬하게 소고기를 탐하고자 한다.

18,000원짜리 도가니탕을 13,000원으로 할인해 판다는 가게 앞에서 가던 길 잠시 멈춰섰다. 혼자서도 밥은 잘 먹지만 그때는 불현듯 처량해서 들어가려다 말았다. 도가니라 하니 스지가 떠오르고 스지 양껏 넣고 끓인 스지수육에 침이 고이며 그걸 안주 삼아 겨울 밤 친구와 거하게 한 잔 기울이던 때가 그리워서다. '돌난로'라는 운치 있는 뜻을 가진 동네 재래시장에 있던 <석로石爐>는 가게 접은 지 오래고 대체제로 자주 찾은 스지오뎅탕 끓여 내던 동네 <투다리>도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스지 나눠 먹던 친구는 먼 곳 떠나 돌아올 줄 모르니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처지, 그게 처량했고 내가 장황하게 소고기를 써댄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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