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같은 성공을 향한 맹목적인 동기부여나 선동하고 기껏해야 사람 사이 주도권을 선점하려 드는 잔기술 따위를 비장의 무기인 양 포장하는 자기계발서나 처세술 관련 서적을 한때 탐닉했더랬다. 단 몇 권의 책으로 달라질 팔자라면 기구하게 살 필요가 없을 뿐더러 대관절 성공이 무엇이관대 없는 능력까지 만들어서 그 헤게모니 안으로 편입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마저 일어 그 방면으로는 완전히 손을 뗐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것만이 성취의 요결이라는 그 도도한 자기계발이라는 게 좌절과 자괴에 시름겨워하는 패자한테는 하등의 인간적인 위로나 응원을 건네지 못하니 누가 치즈를 옮기고 마시멜로가 암만 맛있다 한들 썩소로 일별하고 백안시하면 그뿐이다.
그럴망정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제 아무리 만용을 부려본들 유아독존의 아집이 퇴행적 사회성으로 귀결되기 십상이고, 예나 지금이나 상호부조의 기틀 아래 인적 그물망을 야무지게 구축했느냐 못 했느냐로 인성의 후박을 판단하는 풍조가 여전한지라 기왕에 성글고 공소한 관계를 다시 촘촘히 얽어 나가려는 보수補修의 안간힘으로써 자기계발이라면 부단히 수련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니 영달만을 꾀하려는 말초적 저의가 아닌 ‘사람’ 그 자체에 방점을 두고 보다 본원적인 관계성에 목말라한다면 3,000년 전 구舊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춘추전국시대라는 대격변기를 헤쳐 나간 고대인들에 천착해봄 직하다. 그 깊이를 좀체 가늠할 길 없는 고대인들의 성찰적 태도가 시공을 초월한 인간 관계의 전범으로 더할 나위가 없다고 깨닫는 순간 어느새 그들 틈에 끼여 자기계발을 꾀하는 자신을 발견할지 누가 아나.
인간 세상에서 이뤄져야만 하는 올바른 길이 뭐냐는 ‘천도시비天道是非’의 준엄한 잣대로 정사正史를 기술한 『사기史記』를 내가 인간 탐구의 지침서로 삼은 건 따라서 당연한 수순이다. 춘추전국시대라는 거대한 용광로를 달군 투쟁적 인간 군상들의 면면이 사마천의 유려한 필치와 예리한 통찰과 어우러져 생생하게 그려짐으로써 읽을 적마다 감동이 배가된다. 인간 이성의 고색창연한 퇴적인 고전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시대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면면히 이어질 인간 본연의 보편성을 궁구하는 지적 여정으로써 알차다.
전국시대의 조(趙)나라의 재상 인상여(藺相如)는 자기보다 아래 서열인 염파(廉頗) 앞에서 비굴하게 처신하는 자신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가신들을 만류하며 말했다.
“그대들은 염장군과 진(秦)나라 왕 중 누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염장군은 진나라 왕을 당할 수 없지요."
"나는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 그를 질타하고 그의 신하들을 모욕하였다. 내가 아무리 노둔하다고 할지라도 염장군을 두려워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사정을 살펴보면, 강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두 호랑이가 다투게 되면, 둘 다 무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이렇게 염장군을 피하는 것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적인 원한은 뒤로 돌리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어깨를 드러내고 가시나무 채찍을 등에 지고서,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였다. (肉袒負荊 / 負荊請罪)
“저는 장군께서 이렇듯 관대하게 대해 주시는 줄도 몰랐던 비루하고 천박한 인간입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마침내 화해를 하고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 (『사기』,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서)
대승적인 인상여인가, 솔직하고 화끈한 염파인가. 아니면 서로를 위해 목이 잘린대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비장한 앙상블인가. 나는 그들의 어느 지점에 있을까 없을까. 없다면 왜 없을까. 어떻게 해야 생길까. 물음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