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누구의 리즈 시절이라고 할 때 그 '리즈'란 어원이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관련이 있는 줄 여태 알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애칭이 리즈이고, 일세를 풍미했던 그녀가 배우로서 한창 물이 올랐을 시절, 즉 전성기를 그녀의 애칭에 빚대 표현한 게 아난가 싶었다. 근데 고종석이 쓴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로고폴리스, 2015)에서 밝힌 내용은 딴판이었다. 고종석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물어본 결과 영국의 앨런 스미스라는 축구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굉장히 잘하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로는 경기 성적이 영 형편없어져서 그런 말이 나왔다고 했다. 원래는 ‘앨런 스미스의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었다가 그게 용례가 확대돼서 누구누구의 리즈 시절, '황선홍의 리즈 시절' 이렇게 쓰이고 있단다.(『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 67쪽)
그렇게 리즈 타령을 해댄 저자의 리즈 시절은 언제일까. '흠 잡을 데 없는 문장력을 지닌 스타일리스트', '가장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작가'로 평가받는 고종석이 <유럽의 기자들>이라는 저널리즘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1992년 9월부터 1993년 5월까지라고 한다. 그가 30대 초반이었을 때다. 하기사 그의 데뷔작을 개작한 소설 『빠리의 기자들』(세움, 2014)은 그 연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저널리스트들의 사랑과 연대를 그렸는데 고종석 소설 중에서도 압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종석의 리즈 시절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재현했으니 재미없을 리 없다.
리즈 시절은 '황금기', '전성기'를 가리키는 동시에 '왕년의 젊은 날'이란 의미까지 내포한 것 같다. 즉 인생의 정점을 찍는 시기란 신체와 정신이 가장 왕성한 20~30대 청년기여야 한다는 당위로 비춰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천방지축 나대던 20~30대가 드라마틱했던 한창때였던 건 맞지만 어딘지 미숙하고 어리숙했으며 조마조마, 아슬아슬했던 것도 맞다. 오히려 인생의 희비애락을 몸소 겪어서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관록이 몸에 배어 그게 무엇이든 매달려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 무렵이 완성도 면에서 탁월한 최전성기가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눈앞의 결실에 무덤덤해하고 '그깟 나이가 대수랴' 두 팔 걷고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신박한 투쟁심은 우리의 리즈 시절이 결코 과거지사가 아닌 아직 진행형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고 나는 확신한다. 매주 토요일 아침 시니어들이 모여 토크쇼를 벌이는 <황금연못>이라는 프로를 볼 적마다 느끼는 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