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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22. 2021

정치인의 변신

   '상징자본'은 부르디외라는 철학자가 유행시킨 개념이다. 돈으로 계산되지 않아도 사회적 인정을 얻게 되면 기능할 수 있는 상징적 자본으로 이를테면 위신, 명성, 평판, 존경, 위엄 같은 것을 말한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녹색당 소속으로 출마했던 신지예의 선거 벽보를 두고 말이 많았었다. 선거 벽보가 칼로 도려지질 않나 한 중년 남자 변호사는 자기 페북에다 “아주 더러운 사진”, “개시건방진”, “찢어 버리고 싶은” 따위 격한 표현을 써가며 마구발방했다. 레거시 신문 중에는 페미니즘 백래시 현상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사회면 상단을 장식했다. 점잔만 떨며 특색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다른 선거 벽보들하고는 분명히 차원이 달랐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도발적인 선거 벽보는 페미니스트로서의 후보자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뒀을 뿐만 아니라 당당해서 더욱 치명적인 팜므파탈에 묘한 매력까지 느낀 나머지 신지예란 정치 신예를 열렬하게 응원하고 연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진으로 촉발된 논란에 대해 당시 기사 한 대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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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사진을 두고도 각자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에 대고 공손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탐탁지 않다. 왜 사진마저 공손해야 하는가? 사진 속 인물이 어린 여성 후보이기 때문에? 또는 사진을 바라보는 자신이 중년 남성 변호사이기 때문에? 전자라면 다분히 여성혐오적인 시선, 후자라면 시선의 권력에 의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시선의 갑질>​ , 경향신문, 2018.06.08.)

  

   공직에 출마하는 자가 유권자의 호감을 사거나 자신감을 강하게 어필하려는 포즈나 표정을 두고 왜 왈가왈부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개시건방진 사진을 찍은 게 공직을 수행하지 못할 만큼 중대한 결격사유도 아닌데 저토록 갖은 모욕과 힐난을 퍼붓는 심보가 뭔지 말이다. 아무튼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선거 슬로건을 내건 신지예는 그 해 선거에서 놀랍게도 원내정당이던 정의당 후보를 제치고 전체 4위를 차지했다. 최종 득표수 82,874표, 득표율 1.7%였다.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 기성정당 대신 '제3지대'를 지지한 결과는 정치 신예를 젊은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대표성을 확보해 활동을 이어가게 했다.(한겨레)

   그 신지예가 며칠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그녀의 선택은 대단히 이질적이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거나 형해화하고, n번방 방지법을 '검열법'으로 몰아붙이며, 성폭력처벌법에 무고 조항을 만들겠다는 정당과는 그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신지예 본인 스스로 올 6월 그 당의 당수로 뽑힌 젊은 대표의 당선을 두고 "여성혐오와 차별적 언동을 행하는 인물이 제1야당 대표가 되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지 않았나. 불과 한 달 전 트위터에 "국힘(국민의힘)은 페미니스트들의 대안이 될 수 없죠"라는 글을 올린 걸 이 시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텐가.(<김민아 칼럼> 참조, 경향신문, 2021.12.21.) 

   '여성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고 밝힌 야당 대선후보에 대한 믿음 하나로 캠프에 합류했다고 당사자는 밝혔지만 그 당의 새시대준비위 위원장이란 사람의 입을 통해 영입의 속내를 어림짐작할 수 있겠다. '이대남(20대 남성)'은 자기네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젊은 여성층은 아직 특정 후보 지지를 결정 못한 사람들이 제일 많다나. 결국 신지예라는 페미니스트의 상징자본을 밑천 삼아 표 계산을 하겠다는 심산은 아닐지. 이 신문 저 뉴스를 훑어봐도 그녀가 희한한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발견할 수가 없다. 정치인의 권력을 향한 의지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권력욕이라는 것도 정치인으로서 품은 정치적 정체성이 굳은 심지로 깔려 있을 때에야 비로소 대중들로부터 설득력을 얻는다고 믿는 나로서는 그녀의 변신이 영 달갑잖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선택이라면 불쏘시개로 쓰이다 결국 팽 당할 운명이 아닐지 심히 염려스럽다. 그녀의 캠프 합류를 나는 변절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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