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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21. 2021

크리에이티브한 집단이 비즈니스적으로도 성공하고 싶다

   역사문화학자 요한 하위징아의 역작 『호모 루덴스』를 쉽게 풀어 쓴 노명우의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사계절, 2011)에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인간형이 등장한다. <호모 루덴스>와 <호모 파베르>. <호모 루덴스>가 ‘놀이하는 인간’으로 풀이되고 인간은 놀고 즐기는 존재라고 읽히는 데 반해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의 본질이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할 줄 아는 데 있다고 표방하고 ‘도구의 인간’ 또는 ‘만드는 인간’, 즉 <호모 파베르>로 명명했다.  

   <호모 파베르>가 투자 대비 최대 효용, 합리적인 방식으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고 혁신을 이끌어 문명을 발달시킨다는 자본주의 세상에나 최적화된 산초 판사형이라면, <호모 루덴스>는 당장 시급하지 않은 재미와 명예를 위한 욕구, 즉 '놀이'로 대변되는 다양한 정신적 창조 활동을 추구한 덕분에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했다고 보는 똘끼 충만한 돈키호테형이라면 적절한 비유가 될까.

   대립하는 두 인간형 사이에서 어느 한 편에 편파적이지는 못한다. <호모 파베르>로써의 삶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영위할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상이긴 하지만 서브컬쳐가 정통 문화를 지배하는 역전 현상을 야기시키는 일명 ‘오타쿠’(덕후)들의 행태를 과연 합리성과 유용성만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가 하면 그 대답이 몹시 궁해진다. 오로지 창조적 재미를 추구해 성공한 이들은 또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 

   지난 주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던 한 디지털 디자인 대표의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새삼 <호모 루덴스>와 <호모 파베르>에 대해 생각해 봤다. 회사는 국내 최대 규모라는 삼성동 대형 전광판에다 실물같은 파도를 전시했고, 뉴욕 타임스퀘어에 대형폭포와 물고래를 등장시켜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성공에는 대표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밀린 직원들 월급을 줄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을 겪었고 그럼에도 오로지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한 임직원들의 필사적인 노력과 끈끈한 동료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훈훈한 미담이야 식상한 기업 성공기로 치부할 테지만 한국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의 선구자이자 이 회사의 창업주였던 고故 최은석 대표가 남겼다는 유언같은 말에서는 비장감마저 돌았다.  

   '크리에이티브한 집단이 비즈니스적으로도 성공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먼저 떠난 자의 못다 이룬 꿈을 남은 자들이 마침내 보란 듯이 해낸 쾌거다. 덧붙여 <호모 루덴스>와 <호모 파베르>가 합치면 100m 높이에서 급전직하하는 폭포수처럼 통쾌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내가 노는 사람인지 일하는 사람인지 나누기보다 일하면서 즐기고 즐기면서 일하는 모티브를 찾는 데 애를 써봐야겠다. 글 쓰는 게 슬슬 지겨워지려 할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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