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by 김대일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가 뜨고 질 무렵 저 언덕 너머 보이는 짐승의 실루엣이 친근한 개인지 사나운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때를 가리키는 프랑스 속담이다. 어둠과 밝음의 불확실성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1965년 9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을 '평생 나를 따라다닌 검은개(블랙독)가 있다.'고 표현했다. 검은 개를 우울증과 연결시킨 이는 영국 작가 새뮤얼 존슨(1709~1784)이지만 이 비유를 대중화한 이는 처칠이란다. 영어사전에 ‘블랙독’은 우울증, 낙담으로 풀이된다. 죽음이나 마녀를 상징하는 검은색을 오랫동안 터부시한 인류가 검은개를 기피하는 '검은개 증후군'을 낳은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물론 근거 없는 편견의 결과지만(<여적-검은개 증후군> 참조, 경향신문).

개싸움에 져서 밑에 깔린 개를 언더독, 이긴 개를 탑독이라 하는데 상대적으로 약자가 절대 강자를 이겨 주기를 바라는 심리 현상을 일컬어 ‘언더독 효과’라고 부른다.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위기와 난관을 극복한 언더독 스토리에 자기 일처럼 사람들은 더 열광한다.

전도가 뚜렷했던 적이 언제는 있었겠는가마는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어 부쩌지 못하기는 요즘이 더하다. 소소한 근심거리로 내가 불행하지 않다고 확인하겠다면서도 막상 들이닥칠 끌탕이 감당하기 벅찰 만큼 대수롭다면 나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예컨대 제 딴에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야심차게 덤벼든 가겐데 혹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내 기술 상의 문제로, 혹 상권의 급격한 몰락으로 인해 일어서보지도 못하고 주저앉게 생겼다면 봉착한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사냥감을 몰듯 나를 비관으로 몰아갈 블랙독에 굴복할 것인가 블랙독을 물어뜯을 언더독의 반란을 염원할 텐가.

근자에 부쩍 생각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그리 순탄할 것 같지 않은 내 직업의 길뿐만이 아니다. 심신은 갈수록 고갈되어 가는데 일손을 놓지 못하는 마누라, 이상은 멀고 현실은 비정하다는 걸 알아가면서 그들의 진로를 힘겹게 걸어가야 할 두 딸, 하루하루 지뢰밭을 걷듯 노심초사인 양친의 건강,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기후와 생태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50년 세월보다 더 희미한 다가올 미래의 실루엣은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어 나는 더욱 심란하다. 오늘따라 줄창 개타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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