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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일요일(28)

by 김대일

​눈먼 말

박경리


글 기둥 하나 잡고

내 반 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고

풀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게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


(나도 연자매라는 거 한번 돌려 보고 싶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 겪었던 창작의 고통에 비할까마는 근간에 글 한 줄 온전하게 써내는 데 자꾸 부대끼니 풀이 많이 죽었다. 그 핑계 대고 이쯤에서 쭉 이어온 작업을 그만둘까 고민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남들이 내 글을 읽건 말건, 자기하고 손가락 걸고 한 약속조차 손바닥 뒤집듯 저버리는 모지리는 또 되기 싫어서 다시 마음 고쳐먹는다.

아무튼 눈먼 말은커녕 널찐 말도 얼씬거리지 않아 요새 애 많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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