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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군대 보내기

by 김대일

마스크 위로 앳된 눈매가 역력한 미소년 무리가 가게로 들이닥쳤다. 안 그래도 조붓한 가게에 다섯 깍짓동이 맹꽁징꽁하니 도떼기시장을 방불한다. 그들 중 제일 왜소해 보이는 녀석이 이틀 뒤 군대를 간단다. 친구들 사이에서 입대가 최초라는데 선구자를 격려하기 위함인지 다음은 어김없이 자기들 차례라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저의인지 우루루 몰려 다닌다.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자 동영상을 남긴다느니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튼다느니 야단법석이다. 입대까지 쉬지 말고 퍼마시자고 씩둑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겉으로 상종하는 품으로 봐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다.

자식뻘인데도 군대 가는 친구 보내는 애틋함은 우리 세대와 별반 다를 바 없어 정답다. 다섯 장정들이 떠는 호들갑은 학사주점 방 하나를 점령해 석별의 정을 나누던 우리 세대 입영전야와 아주 닮았다. 군대 가는 놈은 오히려 담담한데 떠나보내는 녀석들이 눈물 콧물 섞인 석별주에 허랑방탕해지는 것도 아마 도긴개긴일 게다. 하긴 이 땅에 징병제가 철폐되지 않는 한 전통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입영 전 송별 의식이 먼저 사라질 까닭도 없겠다.

훈련소 입소하는 당일까지 곁을 지키는 의리파가 지금도 분명 있긴 하겠지만 ROTC로 학교를 졸업한 후 입대한 나보다 일찍 군대 짬밥을 먹은 동기들이 대부분인데도 불구하고 훈련소 앞까지 따라가 배웅한 기억이 나는 전혀 없다. 따라가면 안 될 사연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입대 전 만찬을 온 정성을 다해 즐겼으면 그것으로 친구 된 소임은 다했고 군생활 대신해 줄 것도 아닌데 구태여 입대하는 날까지 동행하는 건 어째 극성스러운 짓 같아 마뜩잖아서였겠다. 그래도 논산이든 춘천이든 훈련소 들어가는 동기의 등에다 대고 눈물 찔끔 뿌리고 온 녀석치고 마치 첫 휴가 받아 나온 신병인 양 으스대지 않은 적이 없어 고건 좀 부럽긴 했다.

좀 외설스럽긴 해도 웃긴 에피소드가 한 꼭지 생각난다. 신병훈련소 들어가기 전날 새벽에 벌어진 해프닝인데 실화란다. 인도네시아에 간 용이의 불알친구들 얘기라는데 그 친구들 사이좋게 지금도 만나나 모르겠다.

신병훈련소 앞까지 따라온 불알동무 너덧은 입영 앞둔 숫보기의 동정을 떼주려고 군부대 주변 색주가를 어슬렁댔다. 생사고락을 같이할 막역지우의 입대를 기념하려는 그들만의 이벤트로써는 가상한 일이겠으나 정작 당사자는 썩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지금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 돈 걱정일랑 말라며 어르고 달래보지만 당사자는 영 마음같지 않게 굴었다. 허나 사람을 뭘로 보냐 눈을 희번덕대면서 까칠하게 굴긴 해도 실은 뒤에서 한 번만 더 어거지로 등 떠밀면 결국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줄 작정이었다나.

거사를 작당모의하는 것도 아닌데 어영부영 시간만 축내다가 서산에 해가 졌다. 우선 숙식부터 해결하자고 의견을 모은 뒤 근처 여관의 제일 큰방을 빌린 장정들은 당장 내일이 입영이라는 현실에 불현듯 울적해졌고 어제 마신 술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석별의 술잔을 높이 들다가 이내 모두들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동 트려면 한참 남은 어둑새벽에 갑자기 누가 벌떡 일어나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다가 분을 이기지 못한 듯 씩씩거리질 않나 여간 아니게 인기척이 나 잠귀 밝은 그 중 한 녀석이 뭔일인가 싶어 소리나는 쪽을 쳐다봤다. 아, 거기엔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날 밝으면 얄짤없이 훈련소로 직행인 그날의 주인공이 눈치라고는 다들 밥 말아 잡숫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디비자는 그 이름도 찬란한 막역지우들을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쏘아보면서 호러무비를 찍고 계시더란다.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지? 칠흑같은 여관방을 휘감은 정적을 깨뜨리는 단말마적 포효.

- 너거가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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