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다른'이라는 뜻을 지닌 'heteros'와 공간이라는 뜻의 'topos'가 결합된 어원으로 현실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건축가 승효상의 설명을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의 개념을 현실에 끌어들인 이가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다. 그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는 특별한 단어를 소개하면서 도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넓히며 새롭게 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부모 몰래 숨고 싶어하는 이층 다락방 같은 공간, 신혼의 달콤한 꿈을 꾸는 여행지, 혹은 일상으로부터 탈출한 듯한 카니발의 세계나 놀이공원 같은 공간이 실제화된 유토피아인데 이를 헤테로토피아라고 이름하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적 공간과 시설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상의 피로를 보상하는 듯한 노래방이나 디스코텍, 혹은 공연장이나 전시장 심지어 박물관이나 공원도 그런 범주에 들어갈 게다. 이런 공간은 도시에 활력을 부르는 시설인데, 공통되는 특징은 그 속에서의 활동이 늘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그런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는 이가 있다면 결코 그 공간은 그에게 유토피아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헤테로토피아는 한시적으로 유효한 유토피아이며 그러므로 일상의 도시공간에서 유용한 존재가치를 가진다.
- 승효상,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80쪽, 돌베개, 2016
나는 부산대학교 장전동캠퍼스 출신이다. 금정산 아래 웅장하게 펼쳐진 전경이 일품인 곳이다. 소설가 김주영이 외롭고 지치고 힘들 때 별다른 약속 없이 인사동에 와서 길 위아래를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노라면 촉촉한 고향의 향기가 있었다고 했는데 나에게 촉촉한 고향의 향기는 장전동캠퍼스다.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만치 울적하면 나는 거길 들른다. 만날 사람도 정한 약속도 없이 무작정 들른 그 곳은 상전벽해라는 말조차도 무색해질 만치 건물도, 사람도, 학교의 냄새까지 확 변해 영 다른 곳을 찾은 불청객인 양 나를 대하지만 요행히 옛 정취가 그 잔명을 부지하는 오래된 것들로 해서 나는 겨우 한시름 던 느낌이다. 가던 발길을 멈추고 멀뚱히 오래된 것들을 쳐다보면서 나는 회상의 시공간을 유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오로지 빈 손을 잡고/그냥 좋기만 하더”란다.
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인 고故 김중업이 설계한 인문관(구 본관)의 회전식 계단을 오르내리면 학번 중 학과를 나타내는 ‘01(국어국문학과)’에 유독 자부심과 애착을 붙들던 철부지 새내기가 떠오른다. 그리도 가고 싶었던 학과인데도 정작 공부와는 아주 담을 쌓고 산 대학 시절에 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책 공부에 버금가는 인생 공부를 부지런히 연마했으니 그것으로 퉁치자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예전만 같지 않다는 학과의 명망이 서글프지만 여전히 인문학의 범주에서도 전위대 역할로 충실할 국어국문학과의 학도라는 줏대가 새삼 전의를 불태운다.
타는 목마름을 부르짖듯 물줄기 졸아든 미리내 얕은 계곡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들떴던 대학 축제의 왁자지껄이 포개진다. 봄이면 어김없이 대학 축제(대동제)가 열리지만 학교 정문 옆에 기괴하게 세워진 백화점과 대학본부 사이의 좁아터진 앞마당에서 몽골텐트가 줄 세워진 도떼기시장 같은 요즘 대학 축제장(역병 돌아 그나마도 취소되고 말지만)하고는 차원이 다른 느꺼움이 있었다. 달랑 파전에 두부김치가 안주의 전부지만 주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호객 행위를 일삼던 미리내판 포장마차들이 축제 기간 내내 우후죽순 성업중이었고 물 만난 고기마냥 밤낮없이 퍼질러 앉아 이 곳 저 곳을 근천스레 술추렴하던 주당들일지언정 그 순수했던 낭만이 곧 이문이었다. 간혹 평소에는 각진 사상의 송곳을 호주머니에 쟁여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자들도 그때만은 불신의 가면을 홀랑 벗어던지고 어깨 겯고 막걸리 잔을 부딪히며 서로가 대취한다. 이 얼마나 훈훈한 화해의 순간인가. 미리내는 허물없는 교감을 유쾌하게 담아내던 만남의 도가니로써 내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아, 그 시절 미라보 철길 다리는 제자리를 지켜 순진한 연인들을 여전히 희롱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조락의 분위기를 자아내던 대학 박물관 건물에 세월은 또 얼마나 덧칠을 해댔을까. 아베크족임을 증명하는 공간으로 치부되던 사회대 앞 잔디밭과 벤치들은 과거의 명성을 또한 계속 누리고 있을지.
누구든지 마음에 품고 사는 자기만의 장소 한 곳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곳을 가끔 찾는 속셈은 현실 속 유토피아, 헤테로토피아에서 가슴 저미는 추억을 되새김질하면서 고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함이겠다.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에도 휴식이 있어야 하듯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정서가 잠시 정차하고 들르는 휴게소인 셈이다. 설령 나의 헤테로토피아가 세월의 유탄을 피하지 못해 변모하거나 유실된다 하더라도 “어디선가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정서의 보루마저 박탈당한다면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삶이 윤택하다고 그 누가 감히 확신할까. 돈으로 그리움을 살 수 있다고? 넌센스다!
대학 동아리 밴드를 뒤지다 한 해 위 형이 장전동캠퍼스를 두루두루 들르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몇 자 적었다. 주인 허가 없이 사진 몇 컷 빌린다. 형,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