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기구 바구니를 만졌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질 않고 다른 사람 트레이에 더부살이하듯 처박혀 있는 걸 발견했다. 기구 바구니에 다리가 달리지 않은 이상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 게 확실하다. 나는 연습이 끝나면 어김없이 내 3단 트레이 맨 윗단에 기구 바구니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두는 습관이 있다. 제 기구에 대해 이발 기술자가 가지는 애틋함이자 루틴이라고 해두자. 그러니 착각 같은 건 없다. 어처구니없는 장면에 짜증이 솟구쳤다. 수족이나 다름없는 가위, 빗, 바리캉 일체를 다른 이가 주인 허락없이 만지는 건 불결하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기구가 가지는 상징성은 이 바닥 사람이면 다들 엄중하게 여기는 바라 동업자 정신에도 어긋나는 몰지각한 작태이다. 하물며 가게 전반을 관할하는 주인이, 자기도 10년 가까이 이발사랍시고 밥 벌어먹고 사는 처지이면서 조리돌림 당하듯 이리저리로 기구 바구니가 돌아다니는 것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선량한 관리자로서 책무를 방기한 거나 다름없다. 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기에 분통이 더 터졌다. 그러면서 기술을 전수한다며 고상한 체 하기는. 내가 주인 원장을 아예 백안시하는 까닭이다.
금~일 알바 가는 날을 빼면 월~목은 학원 비스무리한 데서 커트 연습을 한다. 비스무리하다는 의미는 정식 학원이 아니라는 소리다. 요금 내는 손님을 받는 일반 이발소로 요금 손님을 대상으로 실전을 익힐 기회를 제공하는 대신 견습 비용을 주인 원장이 취하는 구조다. 견습 비용은 주인 원장이 임의로 정해서 딱히 기준이랄 게 없다. 내가 이용사 자격을 막 취득하고 찾았던 작년 10월에는 100만 원만 내면 개업할 때까지 무기한 연습하는 조건이었는데 요새는 또 달라진 눈치다. 부친 가게를 놔두고 굳이 다른 데 돈까지 주면서 실전 연습을 할 게 무어냐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부친 가게는 그 동네에서도 유수의 영업장인데다 십수 년에 걸쳐 부친 손에 길들여진 충성 단골 일색이라 어중잽이가 끼어들 여지란 거의 없다. 돈을 들이더라도 깎는 데 그닥 부담스럽지 않은 유사학원이 기술 익히는 데 제격이라 판단했고 거기 주인 원장 기술을 전수받는 팁도 누릴 수 있는 일거양득을 노리고 들어간 것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주인 원장과 무난하게 지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머리를 어떻게 깎을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내가 깨닫고부터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발 기술은 표준적일지 몰라도 실제 사람 머리를 앞에 두고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는 손님들의 두상, 취향, 이발사의 스타일에 따라 응용되어진다. 부친이나 주말 알바를 가는 가게의 원장은 가급적 깔끔한 스타일을 선호하고 손님들 자체도 그렇게 길들여졌는지 정갈하지 않으면 불평을 한다. 그걸 보고 배운 나여서 연습 대상 손님 머리를 어떻게 하면 더 깔끔하게 깎을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고 이발을 한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손님들이 어떻게 깎아달라고 요구를 하든 방문율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손님이 요구하는 높이보다 1~2cm를 덜 깎음으로써 그 손님이 가게로 재방하는 빈도수를 올리는 요령이 기술이라는 것이다. 한 번 찾을 거 두 번 찾게 만들어야 요즘같은 아사리판에서 그나마 버틴다는 나름의 상술이다. 낮게 깎는다는 건 자란 만큼 머리카락을 깎는 대신 대강 골라준다는 의미다. 바리캉보다는 가위를 사용해야 용이한 이발 기술이다. 모량이나 두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깎다 만 꼴로 보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하는데 나는 전혀 선호하지 않는 기술이다. 더군다나 원장이 내거는 상술의 논리라는 게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기인해 나는 역겹다. 이발사로 60년을 벌어먹은 부친은 단호하셨다. '짧고 긴 게 문제가 아니다. 잘만 깎아주면 오지 말래도 한 달에 세 번 네 번씩 오는 게 손님이다. 요는 손님에 맞는 스타일이지 주인 사정이 아니란 말이다.'
일사불란하고 속도감 있게 깎아내는 부친과 알바 가게 원장 스타일이 몸에 밴 탓에 커트 시간이 15분을 넘지 않는 나는 마치 고릿적 이발소를 연상케 하는 그의 이발 기술(커트, 면도, 염색을 합하면 1시간 가까이 소요)을 배타했다. 월~목 낮 시간 내내 같은 공간에서 복닥거리니 그의 눈에도 내가 고깝게 보였을 게 틀림없다. 대놓고 언쟁을 벌인 적은 없지만 내가 이미 작업을 마친 손님을 다시 불러 앉혀서 머리를 다듬는 도발을 내 면전에서 몇 번 벌인 게 그 증거다.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계속 다니기는 하겠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옛말 하나 그른 거 없다고 여기는 요즘이다. 내 기구 바구니 운운하는 건 기실 구실에 불과하다. 이미 벌어진 틈을 메울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속을 썩이면서까지 거기를 다니기도 싫다. 올 봄에 가게를 열 수밖에 없는 핑곗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