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Jan 18. 2022

늑대 사진을 보면서 드는 생각

   몇 년 전 SNS 상에서 화제가 됐던 사진은 눈 덮인 산을 한 줄로 서서 걸어가는 한 늑대 무리를 찍은 것이었다. 누군가 '늑대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라는 글로 사진을 친절하게 설명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늑대 무리를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세 마리(노란색 원 안)의 늑대는 늙거나 병든 늑대다. 그들이 전체 무리가 이동하는 페이스를 결정하기 때문에 아무도 낙오하지 않고 갈 수 있다. 바로 뒤의 다섯 마리(붉은색 네모 안)는 가장 강한 늑대들이고 맨 마지막에 홀로 가는 늑대(파란 화살표)가 우두머리로서 전체 무리를 지휘한다. 이렇게 효율적이면서도 약자를 낙오시키지 않는 늑대 무리로부터 경쟁에 낙오한 자에게는 가차 없는 인간들이 배워야 한다. 

   

   하지만 글은 사진을 멋대로 해석한 거짓말임이 드러났고 원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진은 2011년 ‘얼어붙은 지구’라는 BBC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장면이다. 25마리의 늑대 무리가 캐나다 북부 극지대에서 아메리카들소를 사냥하러 이동 중이다. 늑대 무리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쌓인 눈 속을 한 줄로 여행한다. 무리의 맨 앞에서 이끄는 것은 늙고 병든 늑대들이 아니라 ‘알파 암늑대’(alpha female)로 무리의 맨 앞에서 리더 역할을 한다.(<'늑대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는 사실일까>, 한국일보, 2016.07.12. 참고)

   

   눈으로 덮인 광막한 대지를 헤치고 나아가는데 늙고 병든 늑대가 선두에 서서 길을 개척할 리 없다. 또 집단의 우두머리라면 진두에 나서는 게 더 어울린다. 전체 무리를 지휘한답시고 맨 뒤에 처져 있는 건 아무리 동물의 세계라도 비상식적이고 모양까지 빠진다. 그럴싸한 상상력으로 포장한 소설이 사람들을 감동시켰지만 결론적으로 사람들을 기망한 셈이다. 

   당신은 사진 속 늑대떼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적자생존의 처절한 상황에 직면해 돌파의 좌표를 찍고 홀로 방향타를 부여잡은 파쇼적 영도자와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리인가 아니면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각자 부여된 임무에 충실하면서 공생하려는 수평적인 관계인가. 호모 사피엔스라고 자처하지만 극단적인 전체주의에 빠져 온 세상을 피로 물든 전력이 있는 우리 인류가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란 법 없다. 거짓말이라고 판명났지만 한 무리의 늑대를 임의로 훈훈하게 해석한 글을 내가 미워할 수 없는 까닭이고 사람들이 왜 그리도 소설을 즐겨 읽는지 그 거짓말을 통해 어렴풋이 눈치채게 된 계기다.

작가의 이전글 과거에 찍었던 사진 다시 찍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