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디지털 도어락 해프닝

by 김대일

일주일 사이에 두 번씩이나 현관문을 건드렸다. 처음엔 광고지를 붙이다 잘못 건드렸겠거니 대수롭잖게 여겼드랬는데 어제 아침은 심상찮았다. 디지털 도어락 패드를 두드리는 품이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눌러 현관문을 열겠다는 낌새였다. 화요일 쉬는 날이라 집에 계시던 부친이 현관문에다 대고 "어떤 새끼야?" 버럭 호통을 치자 인기척이 이내 사라졌다. 의도된 집적거림이 틀림없다.

본가는 지은 지 사 년 된 한 동짜리 아파트다. 디지털 도어락은 기본 옵션이다. 부친은 새벽같이 가게에 나가 초저녁에나 귀가하신다. 모친은 작년 12월 재활병원에서 퇴원한 이래 일요일만 빼고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살다시피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는 집이 텅 비어 있다. 그 새를 노려 침입해 난장을 부린들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내밀한 속사정이 본의 아니게 공개됐다는 데 있다. 주간보호센터 직원들이 아침에 모친을 픽업하자면 가족 중 한 사람이 붙어 있으면 좋으련만 부친이 출근하면 딱히 맡을 사람이 없다(금~월은 내가 본가에서 지내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하지만). 하반신 거동이 불편한 모친을 휠체어까지 태워 모시고 가자니 주간보호센터 직원들이 키로 현관문을 열고 집안을 드나들 수밖에 없다. 키 관리를 엄중하게 하겠다는 센터 원장의 약조를 받긴 했지만 다른 것도 아닌 현관문 키를 가족 아닌 남한테 맡기는 건 양친한테는 미증유의 파격이다. 그래서 더욱 사위스럽다.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현관문을 깨작거리는 짓거리가 최근 일주일 새 연거푸 일어난 게 모친이 주간보호센터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라 공교롭다. 그나마 부친이 집에 계실 때 포착이 돼 다행스럽지만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어서 내내 불안하다. 부친은 몹시 당황해하는 눈치시다. 집안 귀중품이야 이참에 다른 데로 싹 감추면 그만이지만 일요일이면 하루종일 자리보전할 모친의 안위가 더 걱정스러워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부친과 상의해 CCTV 2개를 달기로 했다. 현관문 위에 설치할 한 대는 정체 미상인 자가 현관문에서 얼쩡거릴 경우 그 즉시 부친과 내 스마트폰으로 알람이 울리면서 경고 음성을 내보낼 수 있는 기능을 갖출 것이다. 나머지 한 대를 거실에 설치하려는 건 모친이 혼자 계실 적을 염두에 둬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불안하게 지내는 것보다야 낫겠다는 부친 말씀이 가슴에 꽂힌다. 어느덧 팔순이 코앞인 상노인이 되어버린 당신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한 동짜리 아파트라 관리소장은 입주민을 꿰고 있다. 부친이 저간의 사정을 밝히자 관리소장 나름대로 탐문조사를 벌였고 반나절쯤 지나자 정체가 밝혀졌다. 해당 시간 같은 층 본가 옆집에 새로 들어올 간병인이 본가를 그 집인 줄 착각하고 들어가려고 시도했다는 자백을 직접 받았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찜찜하다.)

작가의 이전글늑대 사진을 보면서 드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