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급행열차

by 김대일

총각으로 서울에서 직장 다니던 1990년대 후반, 전날 폭음으로 만신창이가 되면 외근이 잦은 부서의 이점을 살려 안산행 지하철 4호선에 몸을 싣곤 했다. 반월공단으로 출장간다는 명목 아래 안산역을 찍고 반대 종점인 당고개를 돌아 환승역인 사당역에 당도하는 한나절 내내 지하철 한 구석탱이에 웅크리고 앉아 닭병 걸린 듯 졸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개운했다. 촌뜨기 사서 고생한 폭이지만 서울 구석구석을 뱀 기어가듯 훑고 지나가는 서울 지하철 긴 노선 덕에 공짜로 숙취를 해소한 셈이니 이문 남는 장사로 여길 만했다. 워낙 차도 많고 길 복잡한 서울 도심을 버스로 나다니기가 겁이 나 지하철만 주야장천 애용했지만 급한 용무에 애가 탈 때는 역마다 정차하는 그 지하철이 너무 야속할 때가 또 없지 않았다.

2002 월드컵 이듬해 서울을 떠나 메가시티와는 별 볼일이 없어져서 그쪽 땅 위든 땅 아래 뭐가 새로 들어섰다 한들 내 관심 밖이었다가 살다 보면 어떤 일은 서울이 아니면 안 되는 불가피함 때문에 간혹 입성할 적마다 동경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는 게 생겼다. 목적지를 정해놓고서는 거치는 중간역일랑 전혀 거들떠도 안 보고 거침없이 직진하는 이른바 급행열차의 실체를 목도하고는 천금을 주고 떠다 밀어도 살기 싫은 정나미 뚝뚝 떨어지는 서울이건만 고것 하나는 제일 부럽다고 느꼈더랬다. 동서로나 남북으로나 서울 버금가게 넓고 긴 축에 드는 부산 지형에 적용해도 충분히 요긴할 텐데 왜 안 생기는지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부산 지역지 국제신문 2022.01.19. 헤드라인 제목은 <부산도시철도 1·2호선 '급행' 도입 확정>이다.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월 18일 국토교통부는 부산시가 수립한 '도시철도망 구축계획 변경안'을 확정·승인했다. 변경안에는 1·2호선 급행화 사업이 신규로 확정됐다. 국토부와 시는 급행열차 운행을 위해 도시철도 1호선(노포~다대포해수욕장)의 8개 역사와 2호선(장산역~양산역) 7개 역사에 대피선을 만든다. 급행열차가 도입되면 1호선 운행시간은 78분에서 44분, 2호선은 85분에서 54분으로 줄어든다.

시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예타(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정상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산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급행 도입뿐만 아니고 경전철, 트램 등 굵직굵직하고 중요한 사업이 또 많으니 암만 서둘러도 5년 안에 급행 전철 타기는 글렀다고 본다. 그만큼 나이가 들 테고 나많은 사람이 급행을 탈 정도로 급한 용무가 생길 리 만무하니 그저 부산에도 급행전철이 생겼다 서울뜨기들한테 유세 떠는 용도로 쓰일밖에. 그래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지.

작가의 이전글디지털 도어락 해프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