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도 지나고 해서 보내는 새해 인사

by 김대일

안도현 시인이 쓴 <삶의 비밀>은 '삶이란 무엇인가'란 거창한 물음에 갖가지 기발한 표현으로 답을 대는 짧은 수필이다. 그 중에는,


'오래전에 받은 편지의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우편함을 열어 보는 것'

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렇게 삶은 이기적이다. 기왕 온 편지의 답신할 생각은 않고 수신함만 연신 디비는 사람이 세상엔 부지기수니까. 허나 골방에 처박혀 빛 바랜 앨범이나 들추다 마는 것보다야 '오랫동안 격조한 건 순전히 네 탓이로고' 하는 원망이 내 마음에 닿기를 차라리 나는 바란다. 그래서 그 원망을 그리움으로 착각한 나는 안 돌아가는 대그빡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때까지 온 지성을 들여 그대에게 느닷없어도 반가울 만한 뻘짓을 벌이고 싶으니까. 진부한 표현이겠으나 몸이 멀어져 마음마저 더 멀어지기 전에 나라도 헌신적으로 질척거려야겠다. 무소식이 곧 희소식임을 몸소 관철시키려는 그대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사발째 벌컥거리려는 나나 이기적이긴 매한가지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친구 사이가 맞다.
문자 대신 나는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하얀 백지에 손글씨로 괴발개발 온갖 수다를 떨어 볼까 하다가 확 바뀐 세상인데 고리타분하다며 이죽거릴까봐 관뒀다. 그보다는 제 아무리 회심의 일필휘지인들 주소를 모르면 헛방임을 모를 리 없다. 일찍이 살살이 서영춘 선생이 말씀하셨지.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시는 법이라고.
그렇다고 편지 쓰기 열망을 영영 접겠다는 건 아니다. 요행히 주소를 알았거나 천우신조로 그대와 재회할 행운을 맞이한다면 당장이라도 나는 마치 소설가가 호흡이 긴 대하소설을 구상하듯 책상 앞에서 지긋이 눈을 감고 편지에 담을 내용들을 하나씩 떠올릴 것이야. 하여 하얀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글자들은 그대와 나의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펼쳐지는가 하면 혹은 죽는 날까지 결코 끊어져서는 안 될 인연의 씨줄과 날줄을 새삼 엮고 다지자 촉구하는 재미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계몽주의적 수작이 지배적일지 몰라도, 내 목적은 오직 단 하나뿐이다. 그건 이 따위 시답잖은 짓을 자행해서라도 그대와 나, 우리의 오래된 관계를 더 꼬이고 꼬이게 해 '징글맞을 만치 거시기한 사이'로 영원히 현상 유지시키려는 저의다. 귀할수록 더 자주 건드려야 한다. 이런 시쳇말도 있잖은가. '아끼다 똥 된다.'
마침 시인의 수필에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이런 문구가 또 있다.

'온 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건강과 행복이란 단어들이 그대에게 껌딱지마냥 늘 찰싹 달라붙어 있길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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