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수록 나는 지쳐간다. 예전에는 아니 그랬는데 이런 현상은 필시 내가 급격하게 늙어가는 중이라는 증거다. 조바심이 일 초 일 분 한 시간 하루 이틀 사흘…매일매일 나를 주눅들게 만든다. 곤란한 것에 맞서서 당차게 굴었던 예전의 나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순간을 모면하려 애면글면하고 급한 불만 꺼져도 털썩 주저앉고 마는 유약과 비굴만이 있을 뿐이다. 늙으면 약해진다는데 요즘 나를 보면 이미 조로다.
설날 전날 모친이 꽈당 넘어졌다. 허리를 삐긋했는지 영 맥을 못 추셨다. 인근에 용하다는 통증클리닉을 사흘에 한 번 꼴로 찾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용하다는 그 병원은 갈 적마다 사람들로 미어터졌지만 모친은 늘 고통을 호소했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조마조마했다.
새벽에 다시 넘어지더니 그날로 몸져 누워 버리셨다. 두 다리를 전혀 못 쓰셨다. 급히 척추센터가 있는 인근 중형병원에 부랴부랴 응급으로 입원했다. MRI 촬영사진을 보여주며 담당 의사는 바로 수술해야 하는 장면인데 기저질환, 뇌출혈과 뇌졸중 병력이 있고 파킨슨 증상을 보이는,으로 인한 합병증이 염려되어 수술 시 그러한 상황에 대응할 만한 여건이 당 병원은 구비하고 있지 않으니 약물치료를 통해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담담하게 설명하면서도 제 한계를 단호하게 경계 짓는 의사를 보면서 조바심이 났지만 이쯤에서 제발 나아지길 바라는 허튼 기대감을 품은 나는 분열적이었다.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모친은 말 할 것 없고 하루하루를 허송하는 나도 점점 불안감에 가슴 조렸다. 안 마시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취하면 쉽게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 어김없이 밀려드는 숙취와 숙취를 등에 업은 불안이 나를 더 옥죄었다.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옮기라는 의사 권유를 받아들였다. 3개월마다 통원해 파킨슨 약을 처방 받는 대학병원 신경과에 진료를 의뢰했다. 같은 병원 정형외과 협진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신경과 교수는 순순히 협진 처방을 내려줬지만 정형외과 교수를 만나자면 그로부터 닷새를 기다려야 했다. 그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저녁마다 막걸리, 맥주, 소주를 처마셨다. 피곤했어도 말똥말똥한 정신의 예봉을 꺾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을 성싶어서.
월요일 다행히 입원했다. 곧바로 MRI를 찍었다. 정형외과 교수는 이전 병원에서 찍은 MRI와 별다르지 않아 수술만이 길이니 금요일로 일정을 잡자고 했다. 담당교수의 의연하고도 여유만만한 태도에 안도했다. 한시름 놓았다고 느꼈는지 스르륵 기운이 빠졌다.
어제(목요일) 저녁 수술 동의서 작성하려고 전공의와 면담했다. 담당교수와는 달리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는 쉬운 수술은 아니라고 했다. 골절돼 신경을 막고 있는 부분을 뚫어 신경 통로를 확보하고 피가 고인 부분은 제거하며 허리뼈 위아래로 심을 박는 수술은 대여섯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모친 상태로 볼 때 출혈 과다, 마비 증상 등 수술 후유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 여러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동의서 상에 적혀 있는 '사망'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무심하게 튀어나왔을 때 나는 그저 잘 부탁한다는 말만 되뇌었다. 불안해하는 모친을 안심시킨 뒤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던 나는 마트에 들러 4캔에 9,500원 하는 500밀리 맥주를 샀다. 방문을 잠그고 캔 네 개를 단숨에 들이켰다. 다음 날 아침 8시 반 수술이니 보호자는 8시까지는 병실에 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취기가 올라왔지만 잠 들기 싫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부질없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수술 현황 모니터를 보고 있다. 오후 2시쯤 수술은 끝날 예정이다. 나는 또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이 나를 자꾸만 좀먹는다. 내가 나를 위로하려고 이 글을 써내려갔지만 대기실 한 귀퉁이에 옹색하게 앉아 있는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인명재천일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