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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활한 남자, 더 교활한 여자

by 김대일

남자는 교활하다. 여자의 첫 남자인 듯이 군다. 하지만 여자는 더 교활하다. 남자의 마지막 여자인 듯이 군다. (버나드 쇼)

요네하라 마리는『속담 인류학』(한승동 옮김, 하늘산책, 2012)에서 기득권 논리에 비중을 두고 버나드 쇼의 명언을 해석했다. 남자의 교활함이란 결국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라는 선취권 획득을 위한 투쟁의 다른 이름이라는 듯했다. 하지만 버나드 쇼의 명언은 뒷부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뛰는 남자 위에 나는 여자는 선취권을 획득한 남자의 등에 빨대를 꽂아 마지막 순정까지 쪽쪽 다 빨아먹는 마력을 부리는 팜므 파탈이다. 무리하게 일반화시키는 건 정말 위험하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파란만장했던 연애사를 복기해 보건대 종국에는 여자가 주도권을 쥐고 만다. 자부하는데 나는 덜하지도 넘치지도 않은 이 세상 평균치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여전히 그 기조를 유지 중인 사람이다. 한 마디로 범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여자가 쳐놓은 거미줄에 감긴 줄도 모르고 그 여자의 첫 남자인 양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그건 소유욕에 눈이 뒤집혀 엄부럭을 떠는 멍청이를 얌전하게 다루려는 여자 특유의 전략이자 배려다. 그 여자의 마지막 남자라는 아름다운 착각 덕분에 남자는 사랑에 빠지는 법을 배우니까.

버나드 쇼의 명언을 알아듣기 쉽게 나는 이렇게 고치겠다. 부처님(여자) 손바닥 안 손오공(남자). 마구발방하는 남자, 그런 남자를 순한 양으로 변모시키는 여자는 신비한 공존이다. 여자의 교활함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나는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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