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을 닮은 외모와 매력적인 음색으로 1980년대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가요계를 호령했던, 다른 가수들에 의해 숱하게 리바이벌되고 노래방에서는 인기곡으로 여전히 사랑받는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겨울바다> 따위 발라드 히트곡을 남긴 조정현. 한 인터뷰에서 그에게 가수 생활에 도움이 된 한 마디가 뭐냐고 물었더니 김수철이 건넨 조언이었다고 답했다. '음악은 좋아만 해서는 안돼. 나처럼 미쳐야 한다.'
가왕 조용필 독주는 질리고 음색은 깡팬데 <잊혀진 계절> 류 발라드는 어째 청승맞아서 이용이란 가수한테도 썩 마음이 안 가던 무렵, 몸집은 땅콩만 한 위인이 어디서 그런 기운찬 목청을 뽑는지 속이 다 뻥 뚫리게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불러 젖히는 김수철을 알고부터 동요나 흥얼거릴 나이였음에도 '점마 걸물이네!' 감탄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원 히트 원더로 평생 우려먹는 행사용 가수로 살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연륜이 깊어질수록 음악적 지평까지 넓어진 그야말로 거장의 위용까지 갖췄으니 내가 사람 한번 잘 봤다고 자화자찬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김수철을 당대 최고의 음악 천재로 여기는 까닭이 대중가요 부문에 매몰되지 않고 무용 및 드라마·영화음악, 클래식, 국악을 아우르는 우리 음악 전반에 자기만의 색깔을 덧칠함으로써 세간의 호평이 자자해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진리를 구하려 광야를 떠도는 구도자처럼 음악을 대하는 그의 치열함에 매료됐다는 게 더 솔직한 고백이겠다. 하도 해맑아서 오히려 어수룩해 뵈는 겉모습과는 달리 집요하기까지 한 음악에 대한 열정은 모두가 경외해 마지않는 음악적 대가의 반열로 추동했고 김수철과 동시대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과 자부심이 일기까지 한다.
김수철은 음악 인생 40년을 정리한 회고록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까치, 2017)에서 '나는 늘 사람들 곁에 건강한 소리가 머물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의 음악적 신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대다수 대중들은 <못다 핀 꽃 한 송이>, <정신 차려>,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주제곡 <치키치키차카차카>를 부른 대중가수로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음악 인생 40년은 ‘건강한 소리’를 만들기 위한 분투의 시간이었고, ‘건강한 소리’란 ‘감동을 주는 소리’라고 피력한 대목에서는 종교적 경건함마저 든다. 졸면서 <춘향가> 엘피판을 2년 6개월을 듣고서야 더이상 졸리지 않더라는 고백은 국악을 이해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에두른 표현이자 우리 소리를 만들겠다는 남다른 열정이 아니고 무엇일까.
히트곡 두세 곡을 부른 인기에만 연연했다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고민은 아마 덜었을지 몰라도 아버지 묘소 앞에서 '음악 공부도 공부니까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김수철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순수예술이니 대중예술이니 따질 것 없이 제 분야에 천착해 미친 듯이 파고들어 드디어 전설의 반열에 오른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후진들의 귀감이 되는 사람, 누가 뭐래도 김수철은 나에게는 위대한 작은 거인임에 틀림없다. '음악은 나처럼 미쳐야 한다'는 충고를 조정현이 가슴에 꼭 새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