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보호센터가 설 연휴 동안 쉬는 바람에 모친은 집에만 계신다. 그제는 안경을 새 걸로 바꾸고 싶다 하셔서 휠체어 타고 본가에서 가까운 이마트를 갔다. 거기를 가자면 동천이라 불리는 하천 변을 따라 난 산책로를 거쳐야 한다. 이마트 내 안경점은 양친이 자주 찾는 단골점이고 그 하천 변 산책로가 가장 빠르면서 편한 길이다. 재활병원에서 퇴원하고, 아니 작년 이맘때 발병 이후 햇수로 2년 만에 나서는 짧은 외출이라 모친도 나도 살짝 들떴지만 막상 모친을 모시고 가려니 썩 탐탁지가 않았다.
현재 이마트 문현점이 자리한 곳은 양친이 반백년 넘게 살던 동네로 지금 본가인 아파트와는 동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다. 문현금융단지가 조성되면서 그 주변 일대는 재개발 붐이 일었다. 명색이 한국의 금융 중심지를 자처하는 부산의 랜드마크라는 덴데 그에 걸맞은 환경개선이 필요해서 정비사업이 이뤄지는 중이지만 유독 동천만은 변한 게 별로 없어 보였다. 동천은 부산진구 부암동 백양산에서 발원해 부산항 자성대부두 인근에서 바다와 합류하는 하천이다. 부산 서면 인근을 흐르는 도심하천으로 서울 청계천을 떠올리면 비슷하겠다. 하지만 동천은 오래전부터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급수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질은 오염돼 있었고 악취까지 진동해서 '똥천'이라는 악명으로 더 익숙했었으니까. 수질을 개선한다 냄새를 없애겠다며 시가 바닷물을 쏟아붓고 강 밑에 깔린 오염물질을 걷어내는 등 숱한 노력을 기울였건만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부산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를 흐르는 온천천도 한때는 사정이 비슷했지만 지금은 주민들의 사랑과 자부심을 한몸에 받는 도심하천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온천천을 산책한다면 수긍해도 동천이라면 정신나간 사람 취급한다는 소리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작년 여름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동천 다리를 건너려는데 훅 하고 코끝을 자극하는 악취에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수십 년에 걸쳐서 덕지덕지 쌓인 오염의 더께를 없애자면 그 세월에 맞먹는 수질 개선 노력이 필요할 테니 완전히 복원되기 전까지는 악취와 흉한 미관은 감내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본가로 가기 위해서는 부산 지하철 2호선 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역에서 내려 동천 다리를 건너야 한다. 나는 으레껏 종종걸음으로 얼른 그 다리를 건너려 한다. 하천 주변을 관상할 흥미라곤 눈곱만큼도 없어서다. 그러니 모친이 안경점을 가자고 해서 동천 산책로에 들어서서도 앞만 보고 휠체어를 밀 뿐이었다. 볼일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다시 산책로에 들어섰을 때 모친이 느닷없이 '물이 맑아졌네'라고 하시자 처음에는 못 알아먹고 재차 물었다. 오랜만에 바깥 외출이라 다 좋아 보여서 그런가 부다 넘겨짚고 하천쪽으로 건성건성 시선을 돌렸다. 바닥까지 훤하게 보일 정도로 물이 정말 맑은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냄새도 별로 안 났다. 물이 흐르는 수로 주변이 좀 투박해서 그렇지 수질만은 여느 깨끗한 하천과 어깨를 견줘도 될 법했다. 이리 깨끗하면 물고기도 살겠다고 농을 던졌더니 모친이 '물고기가 돌아다니네 뭘.' 하신다. '에이 설마요…어, 떼로 몰려 다니네!' 언뜻 봐도 성인 팔뚝만한 물고기 수십 마리가 유유히 유영하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산책로를 둘러봤다. 공기가 찼지만 사람들이 제법 산책로를 거닐었다. 한쪽에서는 운동기구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즐비했고 띄엄띄엄 벤치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상적인 천변 풍경이라 한들 타박 들을 까닭이 없겠다. 이런 걸 두고 일취월장이라고 하던가. 정말 몰라보게 변했다. 매주 여길 오고가는 데도 그걸 몰랐으니 내 무심함도 여간만한 게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