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감기몸살인지 골골하다가 엊그제 기어이 몸져누웠다고 마누라가 전했다. 명절 앞이라고 해도 아픈 애를 억지로 끌고 다니다가는 더 탈이 날까 봐 집에 머물게 하고 마누라와 막내딸만 본가를 찾기로 했다. 나는 모친이 퇴원한 이래 늘 그렇듯 지난 금요일 미리 본가에 와 있었다. 부친이 가족들 먹일 명절 먹거리 몇 가지 사오라고 하셔서 본가로 출발했다는 가족과 부전시장에 들러 장을 보려고 서면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기다리는 사이 큰딸한테서 연락이 왔다. 왠지 불길했다.
큰딸이 약학대학원 편입을 준비하는 학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단다. 학원 관계자는 큰딸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길 권했다. 요며칠 불편했던 게 꺼림칙했던 큰딸은 두말없이 가까운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는 사정을 설명해줬다. 한참 큰딸과 통화를 하던 중에 마누라와 막내딸이 도착했는데 나는 의식적으로 마누라와 막내딸을 두어발치 뒤로 물러나게 하고서는 큰딸과 통화했던 내용을 설명했다. 불안한 낌새였는지 마누라는 큰딸과 접촉한 상태로 본가를 찾는 건 양친을 위해서도 썩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했고 여차직하면 온 가족들이 곤란할 듯싶어 마누라와 막내딸을 해운대 집으로 돌려 보냈다.
설날 아침에 나온 큰딸의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보건소에서는 우리 가족들에게 검사를 지시했다. 큰딸이 징후를 보인 요며칠 나는 큰딸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는 않았지만 모친이 다니는 주간보호센터 원장이 검사를 강력하게 권고해서 가까운 보건소로 가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설령 밀접 접촉자가 아니다 할지라도 모친이 보다 안전하고 확실하게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였고 나도 동감했다. 마누라와 막내딸은 검사를 받고난 즉시 해운대 집에서 큰딸과 공동격리에 들어갔다. 아직 특이한 증상을 안 보이는 큰딸은 제 방에서 옴짝달싹을 못하고 나머지 가족들도 영어의 몸인 양 바깥 출입이 봉쇄됐다. 전염력이 이전 것보다 몇 배 강하다는 돌연변이로 인해 괜히 불안해졌다. 그럴 리 없겠지만 검사 결과가 양성이면 나보다 양친이 더 곤혹스럽게 된다. 내 가족이 말로만 듣던 격리상태에 들어간 걸 보면서 그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 가뜩이나 성치 못한 모친의 건강까지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검사를 받고 결과를 나오는 다음날 오전까지 몹시 심란했다.
다행히 마누라와 막내딸, 나는 음성으로 판명이 났다. 큰딸도 현재까지는 별다른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마누라와 막내딸은 꼬박 2주를 격리 신세로 지내야 한다. 백신 2차 접종 이후 90일이 지난 상태라서 음성이 나왔다 해도 잠복기를 감안해 처해진 조치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나는 요행히 격리를 면해 운신하기 수월하지만 음성 결과가 나오자마자 가족이 필요할 만한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아파트 현관문 앞에 당도하자 든 당혹감에 차라리 같이 격리가 됐으면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현관문을 두고 이짝저짝에서 스마트폰으로 용건을 말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는 게 황당하면서 달리 생이별이겠는가 싶어서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보름이라는 기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구속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는 가족의 갑갑함이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그런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미안함이 죄를 지은 죄인의 죄책감처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남 얘기로만 치부하던 코로나 고통에 우리 가족이 직면해 있음이 아직 생경하다. 생뚱한 소리겠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색할 만치 극단적으로 파편화되어 가던 우리 가족의 일상을 회복시키는 데 그 생경함이 일조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보름이라는 기간만이라도 마누라는 출퇴근 부담과 격무에서 벗어나 모처럼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빈둥거렸으면 좋겠고, 큰딸은 고3 때를 연상시킬 만큼 자기를 혹사시키는 일과(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약학대학원 편입 준비)를 잠시 멈추고 심신을 재충전하는 호기로 삼기를 바라며, 막내딸은 음, 방학 때조차 번다한 용무들로 고파했던 꿀잠이나 이참에 몰아서 실컷 자두면 좋겠다. 하여 비록 보름이라는 본의 아닌 정체기를 겪었음에도 해제되는 날에는 다들 때깔 곱게 현관문을 박차고 나오길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