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 저자로 알려진 김민섭은 한 일간지 칼럼에서 원주여고 교훈 개정을 화제로 삼아 변화를 바라는 세대의 요구에 따라 교훈도 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필자는 『훈의 시대』라는 또다른 저서를 쓰면서 공립고등학교의 교훈과 교가를 전수조사했고 ‘훈訓’이라는 언어가 얼마나 낡고 보수적인 형태로 그 구성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있는가를 살폈다고 했다. 남학교의 ‘충성, 용기, 의리’, 여학교의 ‘순결, 고결, 정숙’과 같은 언어들. 산업화와 군부독재 시기에 만들어진 50년이 넘은 그 훈들은 그 시기의 욕망을 담고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으면서 규정하고 통제하려 든다고 했다.(<숨-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경향신문, 2021.02.05.)
원주여고는 학교 부지를 이전하던 2012년부터 재학생을 중심으로 '착한 딸 어진 어머니 참된 일꾼'이라는 교훈을 개정하려 했으나 총동문회가 전통을 파괴하는 행위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세워 무산되었다. 교훈이란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학교의 긍지이자 전통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전통이라는 것이 구성원들이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낡은 언어로 꾸며졌다면 바꿔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언어는 전통이 될 수 없다. 어느 한 시절의 구성원들을 규정하고 그것으로 그들을 움직이는 언어가 반드시 있다. 거기에 익숙해진 개인들은 그 언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전통으로 미화하며 다음 세대에게도 강요하기에 이른다.(같은 칼럼)
시대착오적인 가르침(訓)이라면 바뀌는 게 당연하다. 내가 보기에 요즘 세대는 그들에게 맞지 않은 구태, 구습을 변화시키는 데 우리 세대에 비해 더 적극적인 성싶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전통일지라도 그것이 끝없이 다음 세대를 위해 조직을 변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내던져 버려야 한다. 또 새로운 세대가 그들의 욕망에 맞는 새로운 언어를 선택하려는 것에 딴지를 걸어서도 안 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기 마련長江後浪推前浪이고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전통일지 모른다.
문득 궁금해져서 내 고등학교 교훈을 되작거렸다. 개교 당시 ‘힘쓰자, 일하자, 감사하자’에서 ‘사랑, 소망, 성실’로, 다시 개정되어 현재는 ‘넓고 깊은 배움, 밝고 큰 사람’이란다.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음에 담기에 좀 버겁다 나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