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게 없다와 쓰질 못한다는 천지 차이다. 쓸 게 없다는 건 쓸 거리만 생기면 한 꼭지 정도야 후딱 해치울 수 있다는 자만이 은연 중에 풍기지만 쓰지 못하는 건 제 아무리 구미 당기는 글감을 갖고 와도 요령부득이니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정신머리가 없다 보니 사절지 반 쪽 분량 글 쓰는 짓마저 버겁게 느껴지는 거라 자위를 해보지만 남은 속여도 나는 그게 아니란 걸 잘 알기에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는 내가 군던지럽기 짝이 없다.
글이라는 게 참 희한해서 어떨 때는 글에 날개가 달린 듯이 제멋대로 휘갈겨도 글 같아 보이지만 난다 긴다 하는 글쟁이들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토씨 하나까지 베끼고 외워 그들의 문리에 기대어 볼까 잔머리를 굴린다 한들 제 마음에 드는 글 한 줄 시작을 못해 사람 속을 까맣게 태우는 게 더 흔한다. 요즘 후자에 처해 고역이다. 쓰는 게 두려워지니 일단 피하고 보지만 아니 쓰면 괜히 죄 짓는 성싶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다음날 글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싸맨다. 그러다 기껏 올린다는 게 남이 쓴 글에 몇 줄 토를 다는 게 다인 꼼수니 제대로 된 글일 리 없다.
확진받아 격리된 가족도 가족이지만 성치 않은 양친 걱정스러워서라도 운신하기가 더 조심스러워 안 가면 안 되는 볼일 아니면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다 보니 머릿속이 다 하얘지는 것 같다. 글깨나 쓴다는 이들 치고 박람강기 아닌 자들이 없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지 찾으면 기억에 없고 없는 기억을 더듬다 뭘 쓰려는지도 까먹고 마니 쓰는 작업에 흥미를 잃어버리기 일쑤다. 달랑 하나 남은 일상의 재미마저 이대로 옴나위없이 단념하고 말면 도대체 뭘 하면서 지낼까. 걱정이 여간 아니다.
뭐라도 하긴 해얄 것 같아서 며칠 전부터 대학노트 몇 권 사다가 펜글씨로 소설을 베끼고 있다. 필사하려고 글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표현이랄지 어휘가 눈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기억에 남을 것 같아서다. 또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되씹다 보면 없던 글감이 떠오를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다. 달리 고육지책이겠는가.
여러모로 버거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