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수 해에 받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재작년 위 내시경 검사 결과 듣기에는 한갓진 한약방 약초 이름 같은 '장상피화생' 진단을 받자 특히 부친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몸뚱아리 션치 않으면 못 해 먹는 게 노가다판이나 다름없는 이 바닥 일이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그러니 가게 내기 전까지 아픈 데는 얼른 고치고 잔병 걱정 덜게 보신에 신경쓰라면서 대뜸 50만 원을 건네시는 게 작년 이맘때였다.
저번처럼 위 내시경에 의사 권고로 검사 두어 가지를 더 추가했다. 검사가 끝난 뒤 의사로부터 검사 결과를 듣는데 수면 내시경을 받은 직후라 정신은 가리산지리산하여 갈피를 못 잡았다. 귓가에 남은 소리란 추가로 진행한 검사 결과는 며칠 더 걸릴 테니 병원에 다시 찾아달라는 것이었고 두 손에는 조석으로 먹을 위장약 일주일치가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던 중이었다. 검사원 지시대로 이쪽저쪽으로 가로눕다가 마지막으로 똑바로 누워 웃통을 명치 끝까지 들어올리다 메디컬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어둑침침한 수술실 같은 검사실 조명에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초음파 검사실이 원래 을씨년스럽냐고 물어보려다가 뭔가로 연신 배를 문대면서 모니터에 열중하는 검사원을 방해하기 뭣해서 관뒀지만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라 여겼다. 갈수록 쇠약해지는 몸뚱아리가 기댈 곳은 병원밖에 없다고 하지만 시린 냉기를 발산하는 기계 서슬 앞에서 그저 처분을 기다리는 양 내맡기는 꼬락서니만이 최선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중병에 고생이 자심했던 양친의 선례가 가족력으로 나를 불안하게 옭아매는데도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병원이나 들락거리는 행세는 또 못마땅해하는 모순을 설명하기는 좀 힘들지만.
오복의 하나가 고종명考終命이라 했다. 제 명대로 살다가 편하게 죽는 걸 이른다. '자는 결에 뜨고 싶다' 란 말은 부친의 입버릇이다. 헌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깊게 박히는 아포리즘이 되었다. 잔병에 효자 없듯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게 아픈 것보다 더 서럽다는 요즘 세태고 보면 결코 아프면 안 된다. 아픈 이를 두고 친지가 슬프기보다 거추장스러워 한다면 지금껏 잘 살았던 인생마저 부정당하기 십상이다. 기요틴 앞에 선 인간성이라고나 할까. 그리 풍요롭지 않다면 따라서 안 아파야 한다. 아프려면 견디고 살 만큼만 살살 아프든지. 안 아프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의사의 사무적인 소견보다 스스로가 더 절절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 위 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의식이 돌아올 즈음 병상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내가 다시는 혼자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과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