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Chronos'는 시간의 길이, 즉 기간을 뜻하는 말로서 미래로부터 현재, 그리고 과거로 끊임없이 흐른다. 예를 들면, "정오에 부두에서 만나요"라고 할 때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가 '크로노스'이다. 시간을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 '카이로스Kairos'는 시간의 양이 아닌 시간의 질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특히 "내 인생을 살펴보기에 완벽한 시간"처럼 적합한 시간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카이로스'는 한 사람에게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시간, 즉 보편적 차원의 시간이 아니라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시간이다.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 대니얼 클라인, 김유신 옮김, 책읽는수요일)
유명짜한 자동차회사를 작년 말로 정년퇴직한 최 씨는 깎을수록 더 어려운 게 이발이라고 오늘도 군시렁댄다. 내가 가업을 잇기로 마음 먹고 이용학원엘 들어갔던 2020년, 그는 삼수 끝에 막 자격증을 따고 가발 아닌 사람 머리카락 깎는 데 재미를 붙이는 듯했지만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그의 기술력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는 게 맞다. 자식새끼 다 키워 놨겠다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근속하며 여투어 둔 걸로 등 따숩게 지낼 만도 하지만 아직 팔팔한 나이에 벌써부터 놀고 먹을 수 없다는 나름 절박한 심정으로 입문한 이발사 길이 영 만만치가 않아서 하세월만 야속해하며 조바심이 역력한 기색이다. 당시 같이 어울리던 학원 동기들 대부분이 창업을 한다 일당 고스란히 다 쳐주는 기술자 대접을 받는다며 야단법석인데다 동문수학하는 나마저 개업 초읽기에 들어가니 말은 안 하지만 마스크 위로 심경 복잡해진 두 눈망울 굴러가는 소리가 멀찍이서도 다 들릴 지경이다. 나보다 정확하게 열 살 많은 연배인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훈계할 입장이 못 되어 군소리는 삼가지만 그가 겪고 있을 마음의 소용돌이를 진정시키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그저 맞닥뜨린 그의 현재가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이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