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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일요일(33)
by
김대일
Feb 6. 2022
(가족이 보고 싶다. 큰딸에 이어 마누라, 막내딸까지 차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나만 외따로 본가에서 지낸 지 열흘째다. 마누라와 두 딸은 오늘로 격리 닷새째고 열흘은 더 갇혀 지내야 한다. 우울하다.)
나의 가족
김수영
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
파도처럼 옆으로
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전령(全靈)을 맡긴 탓인가
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은
위대한 고대 조각의 사진
그렇지만
구차한 나의 머리에
성스러운 향수(鄕愁)와 우주의 위대감을 담아주는 삽시간의 자극을
나의 가족들의 기미 많은 얼굴에 비하여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의 소재(所在)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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