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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14. 2022

진상 손님(1)

   형, 동생 부르는 사이인 중년 남자 둘이 들어왔다. 형으로 불린 남자가 더부룩하게 난 머리털을 해가지고 의자에 먼저 앉았다. 그러자 동생으로 불린 남자가 형이란 작자의 머리 스타일을 가지고 원장한테 밑두리콧두리 요구를 해댔다. 정작 당사자는 커트보를 두르고부터는 입을 꿰맨 듯 말문을 닫아 버린 채. 요구사항을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더벅머리를 말끔하게 정리해 달라. 특히 뒷머리를 많이 올려 깎아 시원하게 보이게 해 달라. 염색은 흑갈색이면 좋겠다. 

   족히 두어 달은 이발소 출입을 안 한 성싶은 몰골이니 시간깨나 걸릴 판이었지만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랬다고 원장 신나게 바리캉을 돌렸다. 나는 그 옆에서 흑갈색 염색약을 준비해다가 커트 끝나자마자 도포할 기세였고. 한창 손님 밀릴 토요일 오후였으니까. 누가 봐도 개과천선 각인데 거울 속의 비친 제 모습이 어색한건지 영 못마땅한건지 동생으로 불린 사낼 보고는 다 큰 사내가 투정을 부렸다.

   - 무슨 말을 했길래 머리가 요 모양 요 꼴이냐.

   자기도 다 들었으면서. 동생이 따따부따할 때 거기다 대고 변변하게 말도 못 붙였으면서. 무난하게 깎아서 보기 좋다고 동생이 추켜줘도 화가 단단히 났는지 자릴 박차고 큰 거울이 걸린 샴푸대 쪽으로 가설랑은 혼자 궁시렁거렸다. 급기야 머리 빗던 브러쉬를 집어던지질 않나 상스럽기 짝이 없는 욕설을 누구인지 애매한 상대를 향해 퍼붓질 않나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었다. 샴푸대가 놓인 공간은 커트 공간과 각이 지게 좀 떨어져 있어서 커트하는 데 정신이 팔린 원장, 다른 손님, 같이 온 동생까지 희한하게 진상 떠는 장면을 놓쳤지만 엄부럭 떠는 아이 달래듯 머리에 염색약 묻혀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남자를 졸졸 따라다니던 나는 분노 조절에 실패하면 사람이 얼마나 추해지는지를 확실히 목격했다. 

   어렵사리 염색을 바르긴 했다. 영업장 안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단 마스크 이어밴드가 작업할 때 지장이 많아서 두 귀에서 떼어 고무 재질인 마스크걸이에 고정시켰다가 머리 감기 전에 푼다. 불편하긴 해도 부득이하니 손님들 거개가 참고 견딘다. 머리 감을 때가 돼 샴푸대 의자에 앉혀 마스크걸이를 풀려는데 안 보였다. 있어야 할 마스크걸이는 온데간데없고 이어밴드는 염색약이 잔뜩 묻은 상태로 두 귀에 걸려 있었다. 그런가 부다 넘어가면 그만일 텐데 바로 직전 자행했던 진상에 미운털이 박혀서 아까 걸었던 마스크걸이 어쨌냐고 다그쳤다. 커트점 찾는 손님 중에는 자기 것이 아니면 도통 관심이 없는 부류가 있다. 용도나 까닭일랑 내 알 바 아니고 제 한 몸 불편하고 불필요해서 내팽개치는 치들이 그들이다. 다 좋은데 제발 원래대로 돌려 주면 어디가 덧나나. 계속 채근해도 어따 뒀는지 모르겠단다. 걸리적거리니 휙 아무데나 내던져 버린 게 틀림없다. 다그치는 내 목소리에 쇳가루가 섞였는지 '친절하게 합시다'라고 응수하는데 시비를 걸겠다는 건지 나를 달래겠다는 건지 애매했다. 그런데 그게 더 기분 나빴다. 마음 같아서는 샴푸하려고 들이민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머리를 씻기는 내 손가락에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는가 보다. '친절하게 합시다'라고 또 너스레를 떠는데 뉘앙스가 좀 다르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경고의 메시지 같았다. 순간 갈등했다. 오늘 진상 손님 하나 잡고 장렬하게 알바 때려치워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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