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욕(알바 일당)이 이성을 잡도리한 덕에 별일없이 두 남자가 가게 문을 나서는 걸 보고서야 안도와 함께 울분이 밀려왔다. 안그래도 정신없는 토요일 안하무인한테 바친 내 정력이 너무 소모적이고 억울해서다. 원장은 한두 번 겪은 바가 아니라는 듯 선선하게 입을 뗐다.
- 조폭하다 은퇴한 사람들이라나. 저런 치들은 하는 대로 냅둬야 해. 제 똥 묻은 줄은 모르고 가만히 있는 자길 건드렸다고 헤코지하기 일쑤야. 그러려니 해.
일 년 넘게 커트점에서 알바를 하다 보면 사람들 부류를 대충 분간한다. 흔히 진상이라는 치들은 크게 둘로 분류할 수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에서 내 생각과 빼다박은 부분이 있어 옮긴다.
자기도취의 특징은 안하무인. 나쁜 뜻이 아니라 주변에 타인이 없다는 착오에서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덜하다. 나르시시즘은 자기방어에서 시작되었다. 취약한 자아가 오만이라는 방식으로 수치심을 잊는 것이다. 타인의 존재를 망각하고 홀로 궁궐에 산다. 주지하다시피 ‘공주병’ ‘왕자병’이 초기 증세다.(<정희진의 낯선 사이>, 경향신문, 2013.06.06.)
나르시시스트는 그나마 낫다. 추켜주면 우쭐대는 김에 상대를 살짝 상대를 생각해주는 척이라도 하니까.
승객이 적은 지하철 차량 안에서 10여분간(긴 시간이었다) 큰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 고역인 채 얼굴만 쳐다볼 뿐 방관했다. 한 승객이 “조용히 말하라”고 했다. 그의 반응은? 더 큰 목소리로 “니가 다른 자리로 가!”라고 했다. 홀로 용기를 냈던 그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뻔뻔함은 자기 보호를 위한 위악僞惡이 아니다. 진정성 넘치는 자기확신이다. 또한 이들은 약간의 조증躁症 상태로 자신감 넘치는 즐거운 생활을 한다. 상대가 강자와 약자냐에 따라 얼굴 표정이 급변하는 ‘재능’도 있다. 이들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건강하다. 정신병은 뻔뻔한 사람에게 피해 입은 착한 이들이 걸린다. 자신의 지나친 자신감을 불편해하는 이들을 무능하다고 비웃으며 성공에 강한 집념을 보인다. 사과나 양보를 굴복으로 생각한다. 양심과 윤리, 부끄러움은 자신의 질주를 방해하는 도로의 불필요한 표지 같은 것이다.(같은 글)
자기확신이 강하다 못해 집착하는 이한테는 이길 수가 없다. 그 뻔뻔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아집을 초래해 타인의 어떠한 개입도 불허하니까. 그런 치한테는 무관심밖에 대응할 길이 없다. 만약 그조차도 심기를 거스른다며 진상을 떨면 달리 방법이 없다. 다른 알바를 찾는 셈치고 드잡이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