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병원을 다시 찾아 지난 주 건강검진 결과를 들었다. 기준치에서 콜레스테롤 수치는 약간 높고 당뇨 수치는 1이 높을 뿐이었다. 헬리코박터균이 보인다고도 했다. 잘 듣는 약을 먹고 식습관을 고쳐본들 내시경으로 살펴본 위 상태는 여전히 좋은 소릴 못 듣는다. 2년 전 검진 때와는 달리 한약방 약재 일종으로밖에는 안 들리는 '장상피화생'에 관한 언급이 별로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밖의 자잘한 기미가 엿보이는 부위가 없지 않지만 대체로 경미하다는 소견이었다. 다만 혈관이 다소 두꺼워진 것, 가족력인 당뇨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평소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권고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근력이 떨어지는 걸 절감하는 입장에서 귓등으로 들을 건 아니다.
한 달 단위로 끊어준 약 처방은 첫 한 달은 위장을 다스리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고지혈증 약 위주였다. 한 달 뒤부터는 헬리코박터균 박멸약이 기다리고 있다. 매끼 약이 한 움큼이라 끼니를 밥으로 때우는 건지 약으로 때우는 건지 모르겠는 모친은 점점 약이 줄어드는 반면 아직 팔팔할 나이인 나야말로 약으로 잔치를 벌일 판이다. 하여 건강검진 후 손에 쥔 처방전이 당황스럽긴 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병치레가 잦아지고 옴나위없이 불치의 중병에 걸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 암담해지는 게 우리네 운명일지 모른다. 그러니 안 아프게 여생을 누리겠다는 기원이야말로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다. 차라리 안 아플 순 없다고 마음을 푹 내려놓으면 어떨지. 대신 아프되 살살 아픈 방법을 궁리하는 게 속 편한 처신이지 않을까도 싶다. 원칙을 세워 보자. 잔병치레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시난고난하지는 말 것. 서럽지 않을 정도로만 아프기. 가족들 병수발 든답시고 일상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불상사는 절대 없도록 요령껏 아프다 말기 따위 말이다. 인명은 재천이래서 내 맘대로 아픈 때를 정하고 아픈 정도를 조절할 수야 없겠지만 나도 가족도 최소한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이라는 산 송장 취급은 안 당하게 살살 아플 몸을 만들 필요는 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하는 운동이 더 신통한 효과를 낼 것이고 아프고 불편한 데는 잘 다스리는 건 물론이고 안 아프게 예방해 주는 약이 한 손 가득이라도 흔쾌히 꿀꺽 삼킬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