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색해뒀다는 가게 건물주와 세입자를 만나 가계약을 맺은 게 달포 전이었다. 미장원 자리에 이용원이 들어서서 비슷한 업종끼리 주인만 바뀌는 형국이라 일은 쉽게 진행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개업에 필요한 서류를 문의하려고 관할 구청 환경위생과라는 곳에 전화를 넣었더니 담당 공무원이 개업할 건물 주소나 기존 미장원 상호명을 물었다. 선선하게 주소와 상호명을 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청천벽력이었다. 허가를 내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이 밝힌 불허 사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미장원과 이용원은 다른 업종으로 분류되는 바 승계에 의한 명의 변경이란 있을 수 없다. 미장원이 폐업 신고를 해야 이용원이 새로 허가를 받을 수 있댔다. 들어보니 어렵지 않았다. 절차를 밟아 순서대로 신고하고 허가를 요청하면 될 일이니까. 둘째, 첫째 사유의 연장선상에서 건축물 대장 상에 근린생활시설 용도이어야만 하고 이용원을 운영할 면적이 나와야지만이 영업장으로 신규 허가를 내줄 수가 있는데 제시한 건물은 주택과 근린생활시설로 용도가 섞여 있는데다 1층 전체 면적에서 기존 임차 업장(치킨가게, 국수집)을 뺀 나머지 면적만으로는 이용원을 운영하기에 턱없이 모자라(1평 남짓) 허가를 내줄 수가 없다는 것. 건축물 대장에 근린생활시설 면적이 얼마이고 허가 면적이 얼마인지 시시콜콜하게 알려고 드는 임차인이 얼마나 있겠냐고 항변해도 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데는 별무소용이었다. 계약금까지 건넨 마당에 이대로 파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다른 수가 없는지 물었다. 아주 없지는 않다며 일러준 방법이 용도 변경이었다.
건물주가 사업장 전체를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하면 이용원 신규 허가가 나는 데 충분한 면적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 쪽으로는 거의 문외한일지언정 제 건물을 두고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하는 걸 좋아라하는 건물주를 본 적이 없으니 건설적인 방향으로 건물주를 설득하길 바란다는 공무원의 충고가 되레 낭패감으로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일흔을 넘긴 노파인 건물주는 암만 조리있게 설명을 해줘도 요지부동이었다. 도리어 가게 나가고 들어오는 문제는 임차인들끼리 지지고 볶든 알아서 하고 자기를 자꾸 개입시키지 말라며 연락을 끊기에 이르렀다. 사달이 난 근본적인 원인이 자기한테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물주의 언사는 너무나도 무책임해 천불이 났다. 이른바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작자들의 보수적이면서 자기중심적인 작태를 목도하고 보니 왜 기를 쓰고 자기 건물, 자기 집에 매달리는지를 알겠더라.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 자체를 없던 일로 하면 속은 쓰리지만 대신 허가 리스크가 사라진다. 한 마디로 계약금 손해 보고 손 털면 그만이다 나는. 현 세입자인 미장원 원장도 기한 내 인수자가 안 나타나면 권리금을 포기해서라도 폐업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그 장소에서 장사할 마음이 이미 떴고 다른 물건을 이미 물색해 둔 눈치였으니까. 가장 난감한 측은 따지고 보면 건물주이다. 용도 변경을 하지 않는 한 그 장소는 어떤 업종이 되었던 간에 허가가 나질 않아 임대가 될 리 만무하다. 고로 건물주 입장에서 그 장소에서 제대로 된 월세를 받아 먹자면 건축사사무소로 직행해야 하고 그나마 임차를 원하는 자가 나타났을 때 용도 변경을 후딱 진행하는 게 유익하다.
어거지나 다름없는 건물주의 주장만 확인하고는 공전만 거듭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난 뒤 미장원 원장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이 왔다. 건물주가 용도 변경을 건축사사무소에 의뢰했고 빠르면 2월 중순 내 답변이 올 거라는.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던 건물주의 마음을 바꾸게 해 준 이는 동네 단골 복덕방 주인이라나. 하기사 복덕방과 공생 관계인 건물주 입장에서 누구보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의 조언을 아니 들을 수는 없었겠지. 아무려면 어떠랴. 이로써 계약 당사자들이 한 테이블에 다시 모여 꽃 피고 새가 우는 춘절에 내 이름자 박힌 가게를 열 여지가 마련됐다는 게 제일로 중요하지.
달포 전 그 공무원한테 허가를 낼 수 있는 조건으로 바뀌었는지 확인하러 다시 연락했다. 공무원 왈,
- 똑같은 주소로 용도 변경 여부를 확인하려고 바로 직전에 연락주신 분이 계셨습니다만, 허가 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미장원 원장도 나만큼 애가 탔던 모양이다. 건축사사무소에서 용도 변경 완료 연락을 듣자마자 즉시 구청에 확인 전화를 넣었던 게 틀림없으렷다. 한시름 덜었다. 남은 건 본계약이다. 전과는 달리 허가 리스크가 사라진 마당에 행여 건물주가 가계약 당시 합의했던 임대 조건을 바꾸려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스럽지만 다음 달 10일로 일단 계약일을 잡았다. 용도 변경만한 돌출 변수가 또 생길까마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