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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24. 2022

땜빵 근무

   커트점 원장 외 2명이서 평일, 주말로 나눠 알바하는 근무 시스템인데 아다시피 나는 금~일 주말을 맡는다. 주말 알바는 평일보다 일당이 조금 센 편인 데 비해 일이 많아 고되다. 어제는 수요일인데도 출근했다. 평일 근무자가 미룰 수 없는 건강검진이 잡혀 있다기에 땜빵으로 투입된 것이다. 일요일 근무를 대신 서주겠다는 조건인데 내 입장에서는 썩 호조건은 아니다. 일단 일당이 손해고 주말에 맞춰진 내 루틴도 일순 헝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순순히 받아들인 건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선심성 배려에서였다. 길어봐야 앞으로 이삼 주 뒤면 그만둘 텐데 너무 건조하게 구는 건 자칫 밉살머리궂어 보일 구석이 있으니까 말이다.

   부친이 원장에게 엊그제 연락을 넣어(부친과 원장은 구면이다) 개업 얘기를 먼저 꺼냈다. 구인을 미리 준비하라는 차원에서다. 출근했더니 원장이 벽걸이 달력 앞으로 불렀다. 마지막 근무 시한을 조율하려는 성싶었다. 과연, 원장은 3월 둘째 주까지 근무해 주길 원했다. 속내야 3월 말까지라도 해줄 용의가 충분했지만 그간 겪은 원장 스타일로 미루어 조율이 아니고 통보임을 잘 알기에 두말않고 수용했다. 고로 일 년 넘게 이어져 온 애환의 알바는 3월 13일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지난 일 년여간을 톺아볼 후기는 다음에 얘기할 거리로 남기겠다.

   마지막 시한도 못을 박았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뜨려는데 원장이 재차 불러세웠다. 삼일절 다음날, 그러니까 다음주 수요일도 그날이 아니면 안 될 급한 용무가 생겨 평일 근무자가 재차 양해를 구한다고 전했다. 금요일 근무와 맞바꾸자는 제안이었다. 또 땜빵이다. 다 좋은데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내 의사는 전혀 고려할 마음이 없었는지 '이선생 교체 요'라고 떠억하니 벽걸이 달력에 적힌 글자는 영 거슬렸다. 벌써 찬밥 신세로 전락했나 싶어 괜히 서운해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유시유종하는 게 도리임은 맞다. 일 년 넘도록 애 쓴 내가 참말로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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