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성의한 놈은 아닌데 오늘은 변변하게 글다운 글을 올리지를 못하겠다. 머릿속이 하얀 도화지마냥 표백된 것 같이 멍청한 날이 가끔 있다. 그런 날엔 제아무리 잔머리를 굴려 본들 실속 없이 벽에다 쿵쿵 머리만 처박을 뿐이다. 이럴 때는 디비 자는 게 상책이다.
오늘의 글을 어제 구상하는 게 통상적인 수순이다 보니 어제를 톺아보면 화제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게다. 아니나다를까 있긴 있었다. 두 정치인의 성을 빌어 '유난(윤안)한 야합'이라 명명한 전격적인 단일화가 어제는 이슈의 한가운데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내 귀한 지면을 채우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안 쓰면 안 썼지 그런 것에 내 정력을 쏟는 건 낭비도 여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게 공사 현장 인테리어와 전기 기술자들과 작업에 관해 나눈 얘기들을 시시콜콜하게 나열하는 것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다. 어제가 그랬다. 가게 공사는 정해진 일정대로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고 나라 권력을 아이들 땅 따먹기 놀이쯤으로 여기는 듯한 두 세력이 남들이야 야합이든 뭐라 하든 귓등으로도 안 듣고 마치 다 이긴 사람들 행세를 할 뿐 '이것!'하고 획기적인 거리라고는 당최 눈을 씻고 찾을 수 없었던 날이다 보니 오늘 아침까지 당혹스럽다.
신문도 배달이 안 되는 일요일이 일주일 중 제일로 부담스러워서 꾀라고 부린 게 <시 읽는 일요일>이란 제하로 시만 달랑 옮겨 놓고 때우는 거였는데 오늘은 차라리 이틀 뒤 올릴 시를 땡겨 써서라도 빈 지면을 메우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겠다. 그런 고로 무성의하다는 소리 듣는 걸 죽을 만큼 싫어하는 나이지만 오늘은 이만 손을 놓겠다. 글을 맺고 마침표를 찍으면 사전 투표장으로 직행할 예정이다. 투표장에 들르면 뭔가 퍼뜩 떠오르는 게 생길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