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맹아

by 김대일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내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삼십 년 넘게 이어온 인연들이었다. 다들 결혼해 애들 낳고 그 애들 키우느라 혹은 직장 생활에 치여 살다 보니 만날 짬이 갈수록 쪼그라든다. 그래도 설날과 추석 연휴 때만은 없는 시간 쪼개고 쪼개 꼭 모여 소주 잔 기울이며 회포를 풀곤 했는데 그마저도 역병 돌고부터는 짧은 문자나 주고받으면 다행으로 급격하게 격조해졌다.

역병을 핑계로 대긴 했지만 기실 몇 해 전부터 우애에 균열이 가는 징후가 포착됐다. 전라도 목포, 서울, 김해로 뿔뿔히 흩어진 물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틈도 덩달아 벌어지고 있음을 나는 거의 동물적으로 감지했다. 그 이유가,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그 이유가 혹시 친구라는 존재를 타자화해 물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려는 데서 기인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자꾸 인다. 수준을 찾고 격을 따지는 거라면, 정말 그런 이유에서라면 지난 30년 세월이 참으로 부질없고 야속하다.

개업 인사를 몇 자 적어 그들에게 문자로 보냈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목적이었는데 쓰다 보니 흉중에 품었던 감정 찌꺼기로 도배질해 버렸다. 나도 참 엔간하다. 그저 오해없이 내 마음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모두들 잘 사시는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격조함이 길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니 그게 두려워서 명절을 빌미 삼아 톡으로나마 간단한 안부 전하는 수고로움을 자청하는지 모를 일이네.

나이 먹어갈수록 생각만 많아지는구먼. 나한테 당면한 '뭘 해서 먹고 살까' 라는 생계의 문제는 안정된 생활을 구축하고 영위하는 자네들보다야 훨씬 더 절박한 생존의 문제임에는 틀림없네. 번듯한 직장 생활을 내팽개치고 허송세월로 날려 버린 지난 이십여 년이 그러니 무지 아깝긴 하네. 적금 여투듯 차곡차곡 삶의 실속을 챙겼더라면 지금처럼 먹고 사는 문제로 허덕일 리 없다는 착잡함이 유령처럼 나를 늘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것도 맞네.

허나,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밥만 먹고 사는 게 인생이 아니고 보면 지난 이십여 년 열패의 세월 속에서도 나를 각성시키는 그 무엇이 있어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셈 치고 그런대로 인생의 교훈 하나쯤 건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아주 없진 않았네. 그건 바로 사람 사이 관계를 보다 유연하게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일세.

예전처럼 우리가 한 자리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기회가 온다면 보다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밝힐 테지만, 세월 따라 각자 사는 형편이 달라지고 자기 사정에 쫓겨 아전인수격 외로 틀기를 일삼다 오랫동안 어렵사리 지탱해 오던 관계마저 원심력이 작용하듯 그 궤도에서 자꾸만 이탈해 멀리로만 겉돌다 유야무야되는 그 어정쩡한 종언이 눈에 선해서 한동안은 섭섭하고 분개했던 게 사실이네. 헌데 그렇게 비분해하는 나 역시 따지고 보면 제 논에 물을 대기에만 바빴을 뿐 나 아닌 자네들의 입장을 고려할 의향이 전혀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 하여 나나 자네들,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건 현실을 직시할 냉철함이네. 이렇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어떨까. 데면데면하게 변한 관계망이 어쩌면 예측불허인 우리네 인생의 한 단면일 수 있다고 마음을 탁 내려 놓자고. 하여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새롭게 관계를 설정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되레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 구심력으로 똘똘 뭉치든 원심력으로 튀어 나가든 서로가 서로를 '친구'로 규정하며 태동했던 우정의 맹아가 죽지 않고 잔존해 있는 한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일세. 더 바랄 것도 더 바라는 것도 부담이자 욕심이라고 여기세. 자칫 이대로 살다가 안 보면 그만 아니냐는 체념적 발상으로 젖어들까 살짝 저어되긴 하지만 그보다는 나긋나긋하게 이완된 자세로 상대를 보다 편하게 바라보는 마음의 여백을 가지자는 의미로 받아 주시게들.

정작 본론은 꺼내 놓지는 않고 잡소리만 줄창 늘어놓았네 그려. 부친을 이어 이발사의 길에 들어섰고 이번에 새롭게 개업하네. 시간 되거들랑 내방해 축하나 좀 해주십사 겸사겸사 몇 자 적었네. 우리 모두에게 참된 행복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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